홈플러스가 지난 13일부터 본사와 67개 전 점포의 영업을 중단했다. 운영자금이 바닥나 시설 유지·관리조차 어려워진 탓이다. 파산 시한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노동조합이 대주주 MBK파트너스 등을 상대로 막판 설득에 나섰지만, 돌파구는 나오지 않고 있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이 오는 20일까지 회생의 조건으로 제시한 운영자금 2000억원을 마련할 길이 사실상 막히면서, 홈플러스가 '견련파산(牽連破産)'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커졌다. 견련파산은 법원이 회생절차 폐지와 파산 선고를 하나의 사건으로 묶어 함께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 회생절차가 완전히 끝난 뒤 채권자나 회사가 파산을 새로 신청해야 하는 일반 파산과 달리, 회생 기간에 법원이 정해 둔 빚 갚는 순서를 그대로 이어받는다.
◇ 왜 견련파산으로 갈까
회생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채권자들이 빚 독촉을 하거나 자산을 압류할 수 없다. 채권마다 갚는 순서도 법원이 정해 둔다. 그런데 오는 20일 회생절차 폐지가 확정되고 파산이 따로 처리되면 이 보호막이 사라진다. 먼저 신고하는 쪽, 먼저 압류 들어오는 쪽이 우선순위가 돼 큰 혼란이 생길 수 있다.
견련파산은 이 같은 공백을 없애는 장치다. 회생 때 정해 둔 순서를 그대로 이어받아, 법원이 선임한 파산관재인이 자산을 팔아 순서대로 나눠준다. 업계 관계자는 "채권 규모가 워낙 큰 데다 우선순위를 다시 정해야 해 일반 파산은 혼선이 클 수밖에 없다"며 "법원이 직권으로 견련파산을 선고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 누가 먼저 받나
견련파산이 선고되면 자산은 파산재단으로 묶인다. 돈이 나가는 순서는 정해져 있다. 파산재단을 운영하고 자산을 처분하는 비용이 가장 먼저다. 그다음이 직원들의 3개월 치 급여와 3년 치 퇴직금, 국세와 지방세, 4대 보험료다.
정부가 지난 10일 전수조사로 확인한 홈플러스의 6월 임금 체불액은 333억원이다. 직원 약 1만1400명이 대상이다. 정부는 임금체불 피해 근로자에게 1인당 최대 2100만원까지 대지급금을 지급하고, 긴급한 생계지원이 필요하면 1인당 1000만원 한도로 연 1.5% 저금리 생계비 융자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어서 공익채권 차례다. 공익채권은 회생절차가 시작된 뒤에 생긴 채권으로, 법원이 보호하겠다고 한 것을 믿고 물건을 대준 협력업체들의 납품 대금이 여기 해당한다. 홈플러스 채권자협의회에 보고된 자료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공익채권은 1조999억원이다. 회생절차 개시 당시인 지난해 3월 3328억원에서 1년 2개월 만에 7671억원 늘었다. 미지급 납품 대금 등 상거래채권이 7940억원으로 가장 크고, 제세공과금 820억원, 긴급운영자금(DIP)채권 1614억원 등이다.
회생절차 개시 전에 생긴 빚은 회생채권으로 분류돼 순위가 뒤로 밀린다. 지난해 4월 채권자목록 제출 당시 회생채권은 2조6691억원(2894건), 회생담보권은 269억원(4건)이었다. 금융기관 대여금과 기업어음, 임대차보증금반환채권 등이 여기 섞여 있다.
임대 보증금을 내고 홈플러스 몰에 입점해 장사하던 푸드코트, 안경점, 의류 매장 등의 점주들도 이 후순위에 놓인다. 대구 홈플러스 성서점 입점 점주들이 지난 10일 대구시청 산격청사 앞에서 폐업이 아닌 영업승계를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연 것도 이런 불안감 때문이다.
현재 정부 지원은 협력업체에 맞춰져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은 홈플러스에 납품해 온 협력업체에 긴급경영안정자금 우대금리를 적용하고 한도를 올리기로 했다. 신용보증기금은 위기대응 특례보증 대상에 회생절차 폐지로 피해를 본 중소·중견기업을 추가했고, 은행권도 협력업체당 최대 5억원의 긴급 운전자금 대출을 지원한다.
◇ 열쇠 쥔 메리츠
문제는 나눠줄 자산이다. 홈플러스 점포 62개는 메리츠금융그룹에 담보신탁으로 잡혀 있다. 회사 자산의 99% 수준이다. 담보신탁은 담보물을 언제, 얼마에, 어떤 조건으로 처분할지를 채권자가 100% 결정할 수 있는 제도다. 파산이 선고돼도 파산관재인이 손을 댈 수 없고, 신탁사가 공매로 처분한다. 담보 채권을 다 회수하고 남는 돈이 있어야 비로소 파산재단으로 들어온다.
여기서 채권자들의 운명이 갈린다. 메리츠가 담보로 잡은 자산 가치는 1조5000억원 수준이다. 급하게 경매로 넘기면 회수는 빠르지만 뒤에 남는 채권자들의 몫은 없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메리츠가 함부로 처분해 후순위 채권자에게 대규모 피해를 입혔다가는 사회적 부담이 클 수 있는 만큼 독단적으로 처리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파산관재인과 협의해 진행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앞서 온라인 쇼핑 플랫폼인 위메프 파산 과정에서도 법원이 채권자 보호를 위해 견련파산 절차를 진행한 전례가 있다. 파산관재인 20년 경력의 홍현필 변호사는 "위메프는 담보 자산이 별로 없고 대부분 상거래채권이었지만, 홈플러스는 부동산이 신탁으로 묶여 있는 데다 근로자와 협력업체가 많아 청산이 훨씬 복잡할 것"이라고 했다.
대량 실직에 대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종업원들이 다른 유통기업으로 잘 이직할 수 있도록 돕고, 다른 직종으로 옮기려는 이들에게는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며 "일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직원에겐 재정 지원을 하는 특별 프로그램을 통해 최대한 연착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