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편의점 냉장고를 채우던 수제맥주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 '4캔 1만원' 할인 행사에 맞춰 쏟아져 나오던 상품들과 달리, 최근에는 맥주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은 국내외 브루어리와 협업이 늘었습니다. 단순 가격 경쟁에 의존하기보다 맥주 브랜드 가치와 팬덤을 앞세운 전략을 강화하는 모습입니다.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편의점 업계는 국내외 유명 브루어리와 손잡은 수제맥주를 잇달아 선보였습니다. BGF리테일(282330)이 운영하는 CU는 세계적인 집시 브루어리로 유명한 덴마크의 미켈러와 협업한 제품을 출시한 데 이어 서울 성수동, 합정에서 양조장을 운영 중인 서울브루어리와 손잡은 제품을 내놨습니다.

GS리테일(007070)의 GS25는 일본 크래프트 맥주 브랜드 히타치노 네스트 협업 제품을 선보인 데 이어 프리미엄 수제맥주 브랜드 오리지널비어컴퍼니(OBC)와 함께 맥주 2종을 출시했습니다. 기존에는 샴페인이나 스파클링 와인을 연상시키는 고가의 병 제품만 판매하던 브랜드인 만큼, 캔맥주 출시를 통해 소비자 접점을 넓히겠다는 취지입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 CU 미켈러 버스트 IPA·서울캘리포니아커먼·GS25 히타치노네스트 데이지에일·OBC라거비엔나에일. /각사 제공

가격은 4500~6300원 수준입니다. 미켈러와 히타치노네스트 협업 제품은 개당 4500원, OBC 협업 제품은 4900원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서울브루어리 협업 제품은 6300원으로 더 비쌉니다. 묶음 할인이 적용되긴 하지만, 4캔 기준 가격은 1만3000~1만7200원 수준으로 과거 4캔 1만원 행사 상품과 비교하면 높은 편입니다.

그럼에도 이 제품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브루어리 자체를 보고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시기 수제맥주 열풍 당시에는 편의점과 지역에서 이름이 알려진 브루어리와 협업한 제품들이 쏟아졌지만, 브루어리나 제품이 가진 경쟁력보다는 '수제맥주'라는 카테고리 자체에 기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맥주 애호가, 이른바 '맥덕'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고 명성 있는 브루어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국내외 맥주 전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미켈러, 서울브루어리, 부산 고릴라브루잉 등의 제품이 한동안 화제였습니다. 제품 역시 과거보다 맛이나 완성도 측면에서 기대 이상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습니다.

편의점이 이같이 전략을 튼 배경은 수제맥주 시장의 실패 경험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코로나 시기 급성장한 국내 수제맥주 시장은 이후 빠르게 침체됐습니다. 편의점이 앞다퉈 수제맥주를 출시하면서 상품 수는 늘었지만 대형 제조사 맥주와 차별화가 어려웠고 상당수 제품이 '4캔 1만원' 행사에 묶여 할인 판매되면서 기업들의 수익성은 악화했습니다.

제품 수는 늘었지만 맛이나 품질 차별화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쏟아지는 가운데 공격적으로 투자를 확대한 브루어리들은 경영난이 심화했고, 문을 닫는 곳도 생겨났습니다. 업계에선 수제맥주가 과도한 가격 경쟁 속 행사 상품으로 소비되면서 제값을 인정받지 못하고, 이미지만 훼손됐다는 안타까움을 토로합니다.

서울시내의 한 편의점의 냉장고. /뉴스1

한 차례 침체는 있었지만 편의점들이 수제맥주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이볼과 RTD(즉석 음용 주류)가 인기를 끌면서 일반 맥주와 수입 맥주만으로는 경쟁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편의점 간 단독 상품과 차별화 상품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만큼, 충성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콘텐츠 발굴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수제맥주는 이런 전략에 특히 적합한 상품입니다. 특정 브루어리의 팬층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신제품이 출시되면 사전 예약을 하거나 직접 매장을 찾아 구매할 정도로 충성도가 높은 편입니다. 편의점 입장에서는 대중적인 상품보다 규모는 작더라도 확실한 수요층을 겨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아직 성패를 단정하긴 이르다는 평가입니다. 업계에서도 최근의 변화를 수제맥주 시장의 반등보다는 재편 과정에 가깝게 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할인 행사 상품이나 구색 맞추기용 상품 성격이 강했다면, 이제는 편의점들이 차별화 상품으로서 수제맥주의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하는 단계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수제맥주'라는 카테고리보다 제조사인 브루어리의 개성과 스토리, 맛과 품질을 꼼꼼히 따지는 소비자가 많아졌습니다. '4캔 1만원'으로 상징되던 가격 경쟁의 시대가 저물면서 편의점 수제맥주도 얼마나 싸게 파느냐보다 누가 만들었느냐를 내세우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가격 경쟁 속에 희석됐던 수제맥주의 가치가 이번에는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단순히 '수제맥주'라는 카테고리보다 제조사인 브루어리의 개성과 스토리, 맛과 품질을 꼼꼼히 따지는 소비자가 많아졌습니다. '4캔 1만원'으로 상징되던 가격 경쟁의 시대가 저물면서 편의점 수제맥주도 대중성을 겨루기보다 세분화된 취향과 팬덤을 겨냥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할인 행사에 묻혀 있던 수제 맥주의 가치가 이번에는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