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K)뷰티의 인기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국내외에서 한국 화장품 브랜드를 모방한 가짜 제품(짝퉁)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유명 제품의 용기와 포장 디자인은 물론 한글 표기까지 정교하게 베낀 위조품이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는 모습이다. 화장품은 피부에 직접 바르는 민감한 제품인 만큼, 위조품 유통은 상표권 침해를 넘어 소비자의 건강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짜 설화수 화장품 현품 사진. /관세청 제공

◇ 관세청 적발 위조 물품 35%가 화장품

19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적발된 K브랜드 위조 물품은 11만7000점에 달한다. 위조품의 주요 발송국을 살펴보면 중국이 97.7%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으며, 베트남(2.2%)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사실상 가짜 K브랜드 제품 대부분이 중국에서 건너오고 있는 셈이다.

특히 전체 적발 건수 중 화장품류가 4만1903건(35.9%)을 기록하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전 세계 소비자들이 즐겨 찾는 설화수, 조선미녀, 3CE 등 국내 대표 화장품 브랜드들이 주요 위조 표적이 됐다. 화장품 다음으로는 완구·문구류가 33%로 높은 비중을 보였으며, 식품류(3%), 의류(0.9%), 가방류(0.2%) 순으로 적발됐다.

일부 소비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위조품 구매 피해 사례와 정·가품 구별법을 공유하며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화장품 위조 기술이 갈수록 교묘해지면서 용기 뚜껑의 모양, 재질, 서체(폰트) 등을 육안으로만 확인해서는 정품과 가품을 구별하기가 매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소비자는 국내 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A사의 크림 제품을 구매했다가 가품 피해를 입었다. 배송에 10일이 걸린다는 안내를 받고 기다려 받은 택배 박스에는 발신지가 중국으로 표기되어 있었다고 한다. 외관은 정품과 미세한 차이만 있어 알아채기 힘들었으나, 직접 발라본 뒤 제형이 정품과 완전히 달라 가품임을 인지하게 됐다.

또 다른 소비자는 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M사의 크림 제품을 구매한 뒤 정품과 용기가 다른 것을 발견했다.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판매자에게 문의를 시도했으나, 해당 판매자는 이미 플랫폼에서 계정을 삭제하고 자취를 감춘 뒤였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화장품이 진열돼 있는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스1

◇ 해외 유통 채널까지 장악... 소송전도 빈번

잘 팔리고 유명한 브랜드일수록 가품도 많다. 해외 현지에서도 K뷰티 브랜드들을 노린 위조품 유통이 심각한 수위에 이르자, 국내 기업들은 법적 대응 및 단속 강화에 나서고 있다.

조선미녀 브랜드를 운영하는 구다이글로벌은 최근 미국에서 위조 상품 판매업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구다이글로벌 측은 소장을 통해 "피고들이 아마존, 이베이, 월마트, 테무 등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공식 인증을 받은 진짜 판매자인 것처럼 위장했다"며 "조선미녀의 위조 상표가 부착된 가짜 화장품을 시장에 무차별적으로 유통해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고 밝혔다.

아누아(Anua) 브랜드를 전개하는 더파운더즈의 경우에는 지난 2024년 11월에는 중국 자오칭시에 위치한 가품 생산 공장에서 아누아의 대표 제품인 '어성초 클렌징 오일'을 모방한 위조품 약 2100개가 적발되기도 했다. 이에 인공지능(AI)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위조상품 근절에 적극 나서고 있다.

◇ 소비자 안전 위협... 브랜드 신뢰도에 치명타

위조 화장품이 유발하는 가장 큰 문제는 안전성을 전혀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정품과 달리 가짜 화장품은 제조원과 유통 경로가 불분명하다. 이 때문에 원료 배합의 적정성, 제조 및 품질 관리 상태, 미생물 오염 여부, 용기 표기 성분의 정확성 등을 검증할 방법이 없다. 불법 유해 성분이 포함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위조 화장품은 정품 브랜드의 대외적인 신뢰도 하락으로도 이어진다"라며 "소비자가 가짜 제품을 정품으로 오인해 사용한 뒤 품질에 불만을 갖거나 피부 부작용을 경험하게 되면, 그 비난의 화살이 고스란히 정품 브랜드로 향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연재호 대한화장품협회 부회장, 김용선 지식재산처장,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이종욱 관세청장이 지난 16일 한국지식재산센터에서 열린 위조 화장품 대응을 위한 정부-업계 간 업무협약식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식약처 제공

현재 오픈마켓 형태의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불법 상품이 적발되면 판매 중지 조치를 취하고 소명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위조품 판매자들은 계정을 계속 바꿔가며 새 상품을 다시 등록하거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정품과 위조품을 한 창고에 섞어 두고 무작위로 발송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브랜드 공식몰이나 인증된 판매처에서 구입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했다. 예컨대 쿠팡에서 구매한다면 브랜드 상품을 직매입하는 '로켓배송'에서 구매하는 게 좋다. '판매자 로켓'의 경우 가품 판매자가 일부 섞여 있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가짜 화장품 문제가 K뷰티의 수출 경쟁력을 갉아먹고 소비자 안전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자, 정부도 단속의 칼을 빼 들었다. 지식재산처와 식품의약품안전처, 관세청 등은 지난 16일 업무협약(MOU)을 맺고 위조 화장품 문제에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위조 화장품은 국민 건강과 K뷰티의 신뢰를 위협하는 심각한 과제"라며 "K뷰티가 글로벌 시장에서 그 입지를 더욱 공고히 다질 수 있도록 품질관리 체계 구축, 안전성 검증, 국제 기준 대응 역량 강화 등 실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