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콘서트에 가면 팬들은 무대에서 날린 종이 가루까지 주워 옵니다. 깨끗한 건 키링으로 만들거나 캘린더에 끼워 넣고, 나머지는 콘서트에 가지 못한 팬에게 선물로 보내주기도 해요. 본인의 경험을 간직하고 추억하고 되새기고 싶기 때문이죠."
송수진 고려대학교 글로벌비즈니스대학 융합경영학부 교수는 16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서울에서 열린 '2026 조선비즈 유통산업포럼'에서 "오늘날 소비자는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경험을 수집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경험 수집가'"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AI 시대 소비자는 감정과 시간, 관심의 낭비를 싫어한다"며 "기술이 불편함과 시행착오를 줄여주면서 소비자들은 남는 시간과 관심을 오히려 기억에 남는 경험을 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에는 무엇을 사야 할지 알려주는 것이 기업의 역할이었다면,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소비자 취향에 맞는 상품을 추천해 주는 큐레이션이 소비자들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왜 하필 당신의 브랜드여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최근 소비자들이 자신의 감정과 시간, 관심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 관람 전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를 미리 확인하거나, 러닝 크루에서도 불필요한 대화를 최소화하는 사례를 소개하며 "소비자들은 자신이 써야 할 시간과 비용, 감정의 양을 끊임없이 측정하며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변화의 배경으로 기술 발전을 꼽았다. 넷플릭스의 개인화 추천 서비스를 예로 들며 "소비자들은 이제 자신에게 최적화된 선택지를 제공받는 데 익숙해졌다"며 "기술은 소비자의 시행착오와 탐색 과정을 줄여줬다"고 말했다.
특히 소비자들이 인식하는 물리적·정신적·정서적 거리가 모두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선전의 드론 배송 서비스와 무계획 당일치기 해외여행, 온라인 패션 컨설팅 등을 사례로 들며 "기술이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새로운 분야를 배우기 위한 정신적 거리, 취향 공동체를 형성하는 정서적 거리까지 줄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송 교수는 이런 변화가 소비 패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험을 준비하는 과정이 짧아지면서 소비자들은 더 많은 경험을 짧은 시간 안에 소비하게 됐고, 그 경험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길 원한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에는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지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어떤 경험을 했는지가 한 사람을 설명하는 정체성"이라며 "사람들은 자신을 특정 브랜드의 TV나 냉장고를 사용하는 사람으로 소개하기보다 러닝을 즐기거나 캠핑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설명한다"고 말했다.
실제 학계 연구에서도 경험 소비의 중요성이 확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물질보다 경험이 더 큰 행복을 준다고 응답하는 비율이 높아진다"며 "경험은 비교가 어렵고 기억 속에 오래 남기 때문에 개인의 정체성과 관계 형성에도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소비자들이 수집하는 경험의 핵심 요소로 '의미', '재미', '진정성'을 꼽았다. 친환경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자들은 환경 보호라는 의미를 구매하고, 한정판 굿즈나 독특한 협업 상품은 희소성과 재미를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또 브랜드가 일관된 철학과 스토리를 보여줄 때 소비자들은 진정성을 느끼고 더 강한 유대감을 형성한다고 분석했다.
송 교수는 기업들이 제품 자체를 경험화하는 전략뿐 아니라 경험을 기억하고 공유할 수 있는 장치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BTS 팬들 사례와 함께 박물관 뮷즈(뮤지엄+굿즈) 열풍을 소개하며 "경험을 제공하는 기업이라면 소비자가 그 경험을 기억하고 공유할 수 있는 물성을 함께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업들이 고객과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CPR' 전략을 제안했다. CPR은 큐레이션(Curation), 개성(Personality), 관계(Relationship)의 약자다. 송 교수는 "고객 취향을 이해하는 큐레이션을 제공하고, 브랜드만의 개성과 정체성을 보여주며, 경험 전후로 소비자들이 이야기하고 공유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