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굿즈 전용 플랫폼을 열었다. 팬덤 소비를 겨냥한 팝업 스토어(임시 매장)와 협업 상품이 백화점·편의점 업계의 새로운 흥행 공식으로 자리 잡으면서다. 고물가와 소비 침체에도 캐릭터와 게임, 애니메이션, 아이돌 등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에는 기꺼이 지갑을 여는 소비자가 새로운 소비 동력으로 떠오르자, 이커머스(전자 상거래) 업체 쿠팡도 공략에 나선 것이다.
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지난달 28일 협업 상품 전문관 '쿠팡콜라보클럽'을 선보였다. 산리오와 치이카와, 짱구, 포켓몬 등 글로벌 캐릭터를 포함해 케이(K)팝 아티스트와 인플루언서 협업 상품 등을 한데 모은 플랫폼이다. 쿠팡은 전문관 개설에 맞춰 지난달 29일부터 오는 7일까지 서울 마포구에서 팝업스토어도 운영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상품을 직접 체험한 뒤 QR코드를 통해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이때 고객들이 주문한 상품은 다음날 로켓배송으로 바로 받아볼 수 있다. 팬덤 굿즈와 한정판 상품 등을 보다 쉽고 빠르게 구매하려는 수요에 맞췄다는 게 쿠팡 측의 설명이다.
쿠팡이 이 같은 공략법을 내세운 배경엔 소위 덕후머니의 확대가 있다. 덕후머니란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와 게임, 애니메이션, 아이돌, 크리에이터(인플루언서) 등의 상품과 굿즈에 대한 지출을 아끼지 않는 소비를 뜻한다. 경기 상황에 비교적 덜 민감한 데다 고객 충성도가 높아 유통업계가 주목하는 소비 트렌드로 꼽힌다.
NH농협은행이 올해 4월 공개한 결제 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30세대의 완구 관련 지출은 전년 대비 224% 증가했다. 편의점 CU도 지난달 1일부터 11일까지 완구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75.1% 늘었다. 어린이날 시즌 판매한 포켓몬 카드팩과 산리오 스티커 등 캐릭터 상품 영향으로 보인다. 특히 전체 구매 고객 중 20대는 33.1%, 30대는 28.3%를 차지했다.
업계에선 경제력을 갖춘 2030세대가 팬덤 소비 시장 성장을 이끌고 있다고 본다. 고물가로 일상 소비에는 지갑을 닫더라도, 어린시절 즐겼던 캐릭터와 게임, 애니메이션에 대한 향수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취향·경험엔 돈을 쓰는 선택적 소비 성향이 강해진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2030소비자들은 무조건 저렴한 상품을 찾기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와 취향엔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단순 상품 구매를 넘어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소비 문화가 자리잡은 것"이라고 했다.
유통업계에선 이미 덕후머니의 효과를 체감하는 분위기다. 롯데백화점이 지난달 22일부터 오는 14일까지 잠실 롯데월드몰에서 운영 중인 메이플스토리 팝업 스토어는 개장 직후 첫 주말을 포함한 3일간 방문객 1만명을 돌파했다. 신세계(004170)백화점의 지난해 서브컬처 관련 팝업 매출은 전년 대비 71% 증가했고, 같은 기간 현대백화점의 IP(지식재산권) 콘텐츠 팝업 매출도 38% 늘었다. 특히 지난해 현대백화점이 선보인 팝업 600여 건 중 40% 이상은 게임·애니메이션 등 IP 콘텐츠 행사였다.
특히 업계에선 쿠팡의 이번 진출이 단순 굿즈 판매 확대보다 신규 고객 확보와 플랫폼 경쟁력 강화 차원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현대백화점의 지난해 팝업 행사를 찾은 10~20대 고객 중 60%는 현대백화점을 처음 이용한 신규 고객인 것으로 집계됐다. 게임과 애니메이션 등 콘텐츠를 계기로 기존 백화점 이용 경험이 없던 젊은 소비자들을 유입한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IP 시장이 커지고 취향 소비 트렌드가 뚜렷해지면서, 기존에 흩어져 있던 캐릭터·아이돌·게임·애니메이션·인플루언서 협업 상품을 하나의 전문관으로 묶어 수요 공략에 나선 것"이라며 "특히 한정판과 협업 상품 비중이 높은 시장인 만큼, 오픈런에 나서야 했던 소비자들이 다음날 로켓배송으로 받아볼 수 있도록 한 게 특장점"이라고 했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백화점과 편의점 업계가 공간과 체험을 앞세웠다면 쿠팡은 로켓배송을 내세워 덕후머니 공략에 나선 셈"이라며 "취향 소비와 즉시성 소비를 결합하려는 시도"라고 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장기 불황 국면에서도 추억과 감정에 소구하는 소비가 성장하는 경우가 많다"며 "과거에는 누가 더 화제성 있는 팝업·체험 공간을 만드느냐의 경쟁이었다면, 앞으로는 이를 플랫폼과 배송, 콘텐츠 경험까지 어떻게 연결하느냐가 중요한 경쟁 요소가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