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가 지역 맛집과 상점, 문화 공간을 선별해 소개하는 여행 지도를 선보였다. 여행사와 플랫폼이 주도하던 로컬 여행 큐레이션이 패션·유통을 거쳐 서점으로까지 확산한 것이다. 포털 검색이나 블로그 후기 대신 브랜드가 고른 장소를 따라가는 여행 소비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여행 정보의 기준도 '어디를 갈지'에서 '누가 골랐는지'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러스트=챗gpt

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교보문고는 최근 로컬 큐레이션 프로젝트 '교보갔다 가볼지도'를 공개했다. 부산 지역 셀렉트숍 발란사와 협업한 이 프로젝트의 첫 번째 지역은 대구와 울산이다. 각 지역의 음식점과 카페, 상점, 문화 공간, 숨겨진 명소 등을 지도 형태로 소개하는 방식이다.

교보문고는 자신만의 취향을 발견하고 로컬 고유의 문화를 깊이 있게 경험하려는 트렌드에 맞춰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했다고 한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서점 안에서 얻는 문화적 즐거움과 영감을 바깥으로 확장해 보자는 고민에서 출발했다"며 "'여행의 시작이 그 지역의 서점이면 좋겠다'는 현장 직원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책과 지역 문화, 로컬 공간을 연결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번 경상도 편을 시작으로 전국 매장 인프라를 활용해 로컬 큐레이션 프로젝트 확대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업계는 이 프로젝트를 단순 마케팅보다 여행 소비 방식 변화와 맞물린 시도로 본다. 과거 여행 정보가 관광지 검색과 블로그 후기, 가이드북 중심이었다면, 최근엔 브랜드와 플랫폼이 특정 지역 공간을 선별해 제안하는 '큐레이션형 여행'이 확산하고 있어서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단순 장소 정보 대신 여행자의 취향에 맞는 선택지를 제안해 주는 브랜드의 안목을 중시하는 문화가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여행 플랫폼에선 익숙한 공식으로 통한다. 대표적인 것이 하나투어(039130)의 '후쿠오카 뜨개여행' 패키지다. 일본 후쿠오카를 배경으로 한 여행에서 뜨개인의 성지로 꼽히는 아무히비 공방과 유자와야 등을 방문하고, 뜨개 전문 인솔자가 동행한다. 단순 관광지 방문보다 여행자의 취미·취향을 중심으로 여행 경험을 설계한 것이다.

여행 플랫폼 마이리얼트립은 항공권·숙소 예약을 넘어 현지 투어와 체험형 상품을 강화하고 있다. 제주 요트투어와 스냅 촬영, 지역 체험 프로그램 등 경험 중심 상품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프립도 국내여행 카테고리에서 지역 클래스와 모임형 체험 상품을 운용 중이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검색 한 번으로 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에서 소비자들도 선별된 큐레이션을 선호하는 분위기"라며 "지역의 생활 문화와 체험을 담은 콘텐츠를 즐기거나 숨겨진 명소를 방문하는 등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밀양 아리랑 시장을 찾은 관광객들의 모습. 밀양 아리랑 시장은 일평균 4800여 명이 찾는 관광 거점 중 한 곳이다.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는 무관. /밀양 아리랑 시장 제공

이 같은 흐름은 패션업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글로벌 무신사는 'Digging Seoul Style Map(파고드는 서울 스타일 지도)' 콘텐츠를 통해 성수·한남·명동·홍대 등 서울 주요 상권을 각각 다른 스타일의 지역으로 소개하고 있다. 패션 플랫폼이 서울의 쇼핑 공간과 지역 문화를 함께 안내하는 일종의 도시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 여행 수요도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관광데이터랩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누적 내국인 방문자 수(외지인 기준)는 10억390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5.2% 늘었다. 같은 기간 내국인 관광 소비는 52조704억원으로 5.1% 증가했다.

한국관광공사는 올해 관광 트렌드 중 하나로 '로컬의 재창조(Local Re-creation)'를 제시했다. 지역 음식과 노포, 생활문화 등 일상 요소가 관광 자원으로 재해석되고, 지역 고유의 감성과 취향을 찾는 여행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업계에선 비(非)여행업 브랜드가 지역과 여행 콘텐츠를 다루는 이유로 브랜드 이미지와의 시너지 효과를 꼽는다. 소비자에게 '이 브랜드가 고른 지역·명소·공간이라면 믿고 가볼 만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면 브랜드가 가진 안목과 취향도 함께 강화할 수 있어서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소비자 접점이 제품에서 경험으로 이동하면서 브랜드도 공간과 콘텐츠를 통해 취향을 제안하는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며 "자신의 취향·안목을 가진 브랜드의 추천을 더 신뢰하는 만큼, 여행 큐레이션은 브랜드 취향과 이미지를 확장하는 시너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단순히 정보를 나열한 콘텐츠보다 특정 주제와 취향을 중심으로 깊이 있게 파고드는 '디깅(Digging)형 소비'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분위기"라며 "소비자가 신뢰하는 브랜드와 여행 콘텐츠가 결합하면 브랜드 경험을 확장하는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만큼, 향후 비(非)여행업 브랜드의 여행 큐레이션 상품도 늘어날 가능성도 높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