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면세점 업체들이 올해 1분기 일제히 흑자를 기록하며 실적 부진의 터널을 벗어났지만, 업황 회복을 낙관하기는 이르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국인 구매객 수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1인당 구매액은 지속 낮아지고 있어서다. 과거처럼 중국 보따리상 등 '큰손' 고객이 매출을 끌어올리는 공식이 어려워지자, 면세업계는 일부 고객에 의존하기보다 상품과 콘텐츠를 다양화해 더 많은 개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전략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면세 구역. /뉴스1

31일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면세점 외국인 구매 인원은 119만3862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23.9%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외국인 매출은 9378억원에서 8795억원으로 6.2% 감소했다. 이에 따라 외국인 1인당 구매액은 97만3500원에서 73만6700원 수준으로 1년 새 24.3% 낮아졌다. 면세점을 찾는 외국인은 많아졌지만, 한 명당 매출 기여도는 예전만 못한 셈이다.

면세점 전체 매출도 횡보 흐름에 가깝다. 지난달 국내 면세점 전체 매출은 1조1192억원으로 전월 1조825억원보다 3.4% 늘었지만, 지난해 4월 1조1846억원과 비교하면 5.5% 줄었다. 올해 들어 월별 매출도 1조원 안팎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구매객 수는 회복되고 있지만 객단가 하락이 이어지면서 매출 확대 속도는 제한적인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 면세 사업자들의 실적은 외관상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올해 1분기 매출 7922억원, 영업이익 32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4%, 영업이익은 111% 늘어나며 5개 분기 연속 흑자를 이어갔다. 신라면세점은 매출 8846억원으로 전년 대비 7%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122억원으로 7개 분기 만에 흑자 전환했다.

신세계면세점도 매출이 5% 증가한 5898억원, 영업이익 106억원을 기록하며 2개 분기 연속 흑자를 냈다. 현대면세점은 점포 축소 영향으로 매출이 27.2% 줄어든 2137억원에 그쳤지만, 34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3개 분기 연속 흑자를 이어갔다.

그래픽=챗GPT DALL·E

다만 업계 전반의 실적 개선을 구조적인 업황 회복의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체들이 수익성이 낮은 점포와 사업권을 정리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한 데다, 다이궁(중국 보따리상) 거래 비중을 줄이며 송객수수료 부담을 낮춘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롯데면세점은 2024년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해 희망퇴직과 임원 급여 삭감, 조직 슬림화 등을 추진했고, 롯데월드타워점 매장 면적도 일부 줄였다.

신라면세점은 희망퇴직에 이어 높은 임대료 부담을 이유로 인천공항 DF1 권역 사업권을 반납했다. 신세계면세점도 희망퇴직을 단행했으며, 부산 시내면세점과 인천공항 DF2 권역에서 철수했다. 현대면세점 역시 동대문점을 폐점하고 무역센터점 운영 면적을 줄이는 한편, 직원 직무 전환과 희망퇴직을 추진했다.

비용 구조를 낮춘 면세업계는 줄어든 '큰손' 수요 역시 개별 관광객으로 메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과거 면세점 매출은 다이궁의 대량 구매에 크게 의존했지만, 이들에게 지급해 온 송객 수수료가 수익성을 악화시키면서 업체들은 작년부터 다이궁 거래 비중을 대폭 줄여 왔다. 대신 K뷰티·K패션·K푸드 등 개별 관광객이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는 상품군을 늘리고, 매장 방문을 유도하기 위한 체험형 콘텐츠를 강화하는 모습이다.

신세계면세점 '테이스트 오브 신세계' 인천공항 1터미널점. /신세계면세점 제공

롯데면세점은 올해 1월 잠실 월드타워점에 K팝 콘텐츠를 접목한 '케이팝 포토 리프트'를 조성했다. 전용 엘리베이터를 K팝 아티스트 콘텐츠로 꾸미고, 면세점 매장과 연결되는 동선을 체험형 콘텐츠 거점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현대면세점은 무역센터점에서 'AI 뷰티 트립'을 운영하며 퍼스널 컬러 진단과 피부 상태 분석을 통해 고객에게 맞춤형 뷰티 상품을 추천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신세계면세점은 지난해 7월 명동점 11층과 올해 4월 인천공항 제1터미널점을 K컬처 복합 쇼핑 공간인 '테이스트 오브 신세계'로 리뉴얼했다. 디저트·식품을 중심으로 패션, 기프트, K팝 상품까지 100여개 브랜드를 모은 공간이다. 신라면세점은 서울점에서 대만 관광객 대상 K뷰티 구매 고객에게 찜질방 이용권을 제공하는 행사를 진행했고, 서울점과 인천공항점에 젠틀몬스터·샬롯틸버리 등 인기 브랜드 팝업도 열었다.

업계 관계자는 "관광객들의 쇼핑 양상이 바뀌면서 객단가를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K뷰티·패션·푸드와 체험형 콘텐츠로 개별 관광객의 방문율과 구매 전환율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