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코리아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인 지난 18일 '탱크데이'라는 이름의 부적절한 마케팅을 진행해 물의를 빚은 가운데, 이번 사안이 단순한 실무자 실수가 아니라 내부 검수 체계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은 조직적 실패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마케팅은 대표이사까지 이어지는 4단계 보고 절차를 거쳐 최종 승인됐지만, 이 과정에서 누구도 5월 18일에 '탱크'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하지 않았다. 일부 결재자는 마케팅 시안이 담긴 첨부파일조차 열지 않고 관행적으로 승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세계그룹은 26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마케팅 논란에 대한 진상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는 전상진 신세계그룹 경영총괄(부사장)이 맡았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26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 호텔 3층 그레이트홀에서 대국민 사과문 발표에 앞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정재훤 기자

전 총괄은 "신세계그룹은 사건 발생 직후인 지난 19일부터 약 일주일간 내부 조사를 진행한 결과, 현재까지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려는 고의성을 입증할 명확한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일부 직원들이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휴대폰 제출을 거부하는 등 명확한 진상 규명 과정에서 법적 제약이 있었다"며 "향후 경찰 조사에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신세계그룹에 따르면 이번 마케팅은 스타벅스코리아 이커머스팀에서 제안했다. 기획자가 기안을 올리면 팀장이 검토하고, 담당 본부장을 거쳐 대표이사가 최종 승인하는 구조였다. 실제 이번 마케팅 안건도 팀장, 전략지원본부장, 대표이사 등 4단계 보고 라인을 거쳐 확정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5·18 기념일과 '탱크데이' 표현의 부적절성을 문제 삼은 사람은 없었다. 전 총괄은 "마케팅 기획과 승인 과정에서 단 한 차례의 문제 제기도 없었다"고 밝혔다.

조사 과정에서는 일부 결재자가 마케팅 디자인 시안이 담긴 이메일 첨부파일을 열지 않고 승인한 사실도 확인됐다. 해당 결재가 충분한 검토 없이 관행적으로 이뤄졌다는 뜻이다.

신세계그룹은 이번 마케팅의 고의성 여부와 관련해 현재까지 이를 입증할 명확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룹은 지난 19일부터 약 일주일간 스타벅스코리아 이커머스팀 전원과 전략기획본부, 대표이사 등 결재 라인을 대상으로 휴대폰과 노트북 포렌식 검증, 교차 신문 등을 진행했다. 담당자가 업무에 사용한 기타 장치와 하드드라이브도 회수해 조사했다.

다만 '탱크데이' 네이밍을 제안한 직원 등을 포함한 이커머스팀 직원 3명은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휴대폰 제출을 거부했다. 이에 따라 회사는 해당 직원들 사이에서 이번 마케팅과 관련해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업무 처리 과정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사내 메신저 대화 기록이 회사 서버에 일주일만 저장돼 최초 마케팅 기획 단계에서 오간 대화 내용도 확인하지 못했다.

전상진 신세계그룹 경영총괄 부사장이 26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 관련 내부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내부조사 과정에서 관련 직원들은 고의성을 적극 부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 총괄은 "해당 마케팅 행사를 기획한 직원들은 조사 과정에서 '가방에 쑥 등 기존 마케팅 문구와 운율을 맞추는 데 집중했을 뿐 5·18을 떠올리지 못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문구를 만들었으며 논란이 된 뒤에야 문제를 인식했다'라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다만 신세계그룹은 이 같은 진술만으로 사전 모의나 고의성 여부를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휴대폰 제출을 거부한 이커머스팀 직원 3명에 대해서는 경찰 조사에 적극 협조해 추가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 총괄은 "경찰 조사 결과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려는 의도가 확인될 경우 해당 임직원을 즉시 해고하고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신세계그룹은 이번 마케팅에 관여한 직원 5명을 모두 직무에서 배제했다. 손정현 전 스타벅스코리아 대표와 담당 임원은 해임 조치했다. 그룹은 향후 조사 결과에 따라 추가 책임자에 대해서도 엄중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신세계그룹은 온라인상에서 제기된 일부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 결과를 설명했다. 탱크 텀블러 명칭과 관련해서는 해당 제품이 해외 제조사가 제작한 텀블러이며, 명칭은 실제 '물탱크'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는 제조사 측 입장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제품 용량 503㎖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수인번호 '503'을 연상시킨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17온스를 밀리리터로 환산한 수치라고 설명했다.

미니 탱크 텀블러 출시일이 세월호 참사일인 4월 16일로 정해진 데 대해서는 스타벅스코리아가 당초 4월 20일을 제안했지만, 행사 업체 측이 4월 16일로 확정 통보했다고 밝혔다.

탱크 듀오 세트 할인율 21%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집단 발포일인 5월 21일을 상징한다는 의혹도 부인했다. 세트 구성품 중 미니 탱크 텀블러 가격을 2만5000원에서 1만2500원으로 조정하면서 전체 세트 가격이 6만원에서 4만7500원으로 낮아졌고, 이 과정에서 할인율이 21%로 계산됐다는 것이다.

전 총괄은 "국민 여러분께서 1999년 1호점 이후 지난 27년간 스타벅스코리아에 큰 사랑을 보내주셨지만, 저희는 이 사랑에 보답하지 못하고 큰 상처를 남겼다"고 했다. 이어 "기업의 사회적 가치와 책임에 대해 숙고하는 계기로 삼겠다"며 "밑바닥부터 다시 신뢰를 쌓아올려 국민께 사랑받는 기업으로 다시 자리매김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