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K)뷰티 성지'를 꿈꾸는 CJ올리브영이 결국 미국 본토에 깃발을 꽂는다. 국내 H&B(헬스앤뷰티) 시장을 장악한 올리브영이 세계 최대 뷰티 시장인 미국에 직접 오프라인 거점을 구축하면서 북미 K뷰티 유통 질서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기존 K뷰티 유통 강자들과 인디 브랜드들의 셈법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2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CJ올리브영은 오는 29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 콜로라도대로에 '올리브영 패서디나점'을 개장한다. 패서디나점은 개점 초기 약 400개 뷰티·웰니스 브랜드의 상품 5000여 종을 선보인다.
핵심은 '빠른 큐레이션'이다. 국내 올리브영처럼 K뷰티 트렌드를 실시간 반영해 짧게는 2주 단위로 매대 구성을 바꾸겠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멤버십과 할인 프로모션까지 현지화해 미국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올리브영은 우선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사업을 키운 뒤 뉴욕 등 동부 핵심 상권까지 오프라인 거점을 확대할 계획이다.
뷰티업계는 올리브영의 미국 진출로 북미 지역 유통 문법이 어떻게 달라질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올리브영의 미국 진출이 단순히 매장 하나를 여는 수준이 아니라 K뷰티 유통 주도권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북미 K뷰티 유통은 실리콘투가 사실상 핵심 허브 역할을 해왔다. 실리콘투는 글로벌 플랫폼 '스타일코리안'을 기반으로 미국 현지 물류와 유통망을 구축하고 월마트 등 대형 리테일 채널에 K뷰티 브랜드를 공급해 왔다. 국내 인디 화장품 브랜드 상당수도 실리콘투와 단독 유통 계약을 맺고 북미 시장에 진출했다.
그런데 올리브영이 직접 북미 유통망 구축에 나서면서 상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실리콘투가 물류·유통 중심의 B2B 플랫폼이라면, 올리브영은 소비자 접점과 브랜드 육성 능력을 동시에 가진 B2C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영향력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기존 유통 파트너를 유지할지, 올리브영이라는 새 채널에 올라탈지를 두고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올리브영도 미국 진출을 준비하면서 실리콘투와의 관계 설정을 두고 고심이 깊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당장은 경쟁보다는 협업으로 방향을 정했지만 오래갈 수 있는 협업 관계는 아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뷰티업계에서는 올리브영이 미국에서도 국내와 비슷한 브랜드 영향력을 갖게 될 경우 유통 질서 자체가 재편될 수 있다고 본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올리브영은 국내에서 브랜드를 키우는 능력이 워낙 강하다"며 "미국에서도 비슷한 영향력을 갖게 되면 인디 브랜드들의 선택지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북미 유통 판도는 최근 들어 더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 실리콘투의 주요 고객사였던 구다이글로벌도 지난 2월 북미 유통업체 한성USA를 인수하면서 북미 지역 유통망 확보에 나섰다. 구다이글로벌은 조선미녀, 티르티르, 스킨푸드 등을 보유한 업체다. 한성USA 인수를 통해 현지 공급망과 운영 인프라를 직접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뷰티업계에서는 이런 변화 자체가 K뷰티 위상이 달라졌다는 증거라고 본다. 과거에는 국내 브랜드들이 미국 유통사 문을 두드려야 했다면, 이제는 한국 기업끼리 북미 유통망을 놓고 경쟁하는 단계까지 왔다는 것이다.
손민영 KB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최대 뷰티 시장인 미국에서 단일 기업이 K뷰티 물량을 독점 공급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어렵다"며 "유통 채널 다변화가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