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 운동을 희화한 스타벅스코리아의 소위 '탱크데이' 논란이 나흘째 확산하고 있다. 광주를 중심으로 스타벅스 불매운동이 번지고, 모바일 쿠폰 발행 사업에도 차질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에 대한 퇴진 요구가 빗발치고 수사로까지 사태가 커진 상황이다.

신세계그룹과 스타벅스코리아는 사건을 인지하자마자 스타벅스코리아 대표이사와 임원을 해임하고 정 회장 명의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누가 왜 이런 일을 벌였는지 밝혀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신세계그룹과 스타벅스코리아는 그룹 감사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사건이 벌어진 배경과 상황에 대해 함구하고 있고, 이는 스타벅스코리아 내부적으로 '노노(勞勞)갈등'을 불러오고 있다.

오월을 사랑하는 모임 등 광주시민단체들이 지난 21일 오후 광주 서구 광천동 이마트 광주점 앞에서 스타벅스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스타벅스 OUT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뉴스1

◇ 감사 중이라면서 자초지종 쉬쉬하는 스타벅스코리아

22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 18일 스타벅스코리아는 '탱크데이' 행사(프로모션)로 5.18 민주화 운동을 희화한 커머스팀을 조직도에서 삭제 처리했다. 스타벅스코리아 측은 아직 자초지종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에 대한 2차 가해가 일어날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를 두고 스타벅스 점포에서 근무하면서 소비자를 만나는 직원들 사이에선 불만이 나오고 있다. 회사를 논란의 소용돌이에 넣은 이들은 보호하면서 정작 현장 직원들에 대한 배려는 없다는 취지다.

스타벅스코리아에서는 공식적으로 6개월 차 직원이 기획안을 만들어 올렸다거나, 팀장은 모두 지방 발령이라거나 등의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만 밝히고 있다. 스타벅스코리아 대표와 기획 담당 임원의 해임, 파트장과 팀장 업무 배제만 확인된다.

최근 본사 지원센터 직원을 대상으로 한 타운홀 미팅에서 한 임원이 '고의로 한 일이 아니길 믿는다'는 취지의 발언이 나온 것에 대해서도 내부 반발이 일고 있다. 내부에선 역사 왜곡 논란의 책임을 희석하려는 발언이라는 비판부터 시간을 끌기 위한 감사가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해임된 대표이사나 임원도 말을 아끼고 있다. 문제가 된 이벤트를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결재라인 선상에 있었다는 점에서 몰라도 문제인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사건을 파악할 겨를도 없이 해임되면서 정확한 내막을 알기 어려워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해임된 임원은 말이 없을 것이고 실무진에 대한 조사도 '몰랐다'는 취지로 막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픽=정서희

◇ 불매운동에 스타벅스와 거래 등 돌리는 관공서·기업들

논란은 거세지는데 감사 결과가 늦어지면서 스타벅스코리아의 사업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소비자의 불매운동도 문제지만 법인이 모바일 상품권 등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B2B(기업 간 거래) 비즈니스 자체에 타격이 크다. 스타벅스코리아에서 모바일 상품권 등의 법인 영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매출의 10~15% 수준이다.

행정안전부는 스타벅스 불매 의사를 밝혔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21일 엑스(옛 트위터)에서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정부 기관들은 그동안 각종 설문조사와 공모전, 국민 참여 이벤트 등에 커피 교환권 등 모바일 상품권을 활용해 왔다"며 "최근 물의를 빚은 스타벅스코리아의 반역사적 행태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앞으로 민주주의의 역사와 사회적 가치를 가볍게 여기거나 상업적 소재로 활용한 기업의 상품은 제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행정안전부 산하 기관 등의 정부 주관 행사와 이벤트에서 스타벅스 제품이나 상품권 사용이 급감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밖에 한국관광공사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보통신산업진흥원도 이벤트 경품을 스타벅스 쿠폰에서 다른 커피 브랜드로 바꿨다.

민간 기업 분위기도 비슷하다. NH농협은행은 지난 18일부터 오는 28일까지 프로야구 구단 NC다이노스와 협업해 진행했던 '위풍당당한 승부 예측' 이벤트 경품을, 스타벅스 음료 쿠폰에서 투썸플레이스 아메리카노 쿠폰으로 변경 지급하기로 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소소한 마케팅 행사를 할 때 호불호가 적을 것으로 생각해 선택했던 것이 스타벅스 모바일 커피 쿠폰이었는데 이제는 대체제를 찾으려고 한다"고 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신세계그룹 제공

◇ 매출 확대 위한 과도한 마케팅·오너 리스크가 화 키웠다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마케팅 문구나 시안은 과거에도 여러 기업들을 위기에 빠뜨리곤 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논란을 인지하고 발 빠르게 대표이사를 해임하고 사과문을 올렸는데도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둘러싸고 스타벅스코리아 내외부에서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우선 스타벅스코리아가 과도한 마케팅 활동에 나섰다는 점이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최근 매출 둔화를 타개하기 위해 기획 음료와 푸드를 늘리고 굿즈 상품을 확대했다. 부서별로 따로따로 마케팅을 기획하고 규모에 따라 전결이 이뤄지면서 정작 이를 운영해야 하는 스타벅스 점포에서는 혼선이 생긴 경우도 많았다.

전사 직원이 함께 보는 스타벅스 게시판에 따르면 최초 행사 공지가 나가고 연이어 수정과 덧붙임 글이 올라오는 것이 흔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최종 조율이 안 된 상태에서 행사가 진행됐고, 문제가 생기면 임시방편으로 상황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특정일을 기점으로 몇 개의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는 컨트롤타워가 사실상 없다"고 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최근 보여온 행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 회장은 2022년 개인 소셜네크워크스비스(SNS)에 '멸공(공산주의를 멸한다)'과 콩 사진 등을 함께 올리면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는 과거 보수 진영의 반공주의 이념에서 비롯된 구호지만, 극우 성향 커뮤니티 '일베(일간베스트)'와 엮이면서 이념적 논란이나 극우 성향의 정치적 놀이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 최근에는 그가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 등 미국 내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과 가깝게 지내는 모습을 보이면서 극우 색깔이 강조되기도 했다. 미국 내 MAGA 정치권 관계자들은 미국 내 정치스펙트럼에서 극우에 가깝다는 평가가 많다. 이는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번 사태가 정치쟁점화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미국 상장사 쿠팡도 MAGA 인사를 비롯해 대미 로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쿠팡은 대관의 원칙에 따라 '물 밑에서' 작업을 한다. 그런데 정 회장은 드러내놓고 친분을 과시했다"면서 "이런 정치적 성향이나 친분의 표시는 사업에 탄력을 줄 수도 있지만 부메랑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고 했다. 한편 정 회장은 논란이 있었던 5월 18일 미국에 머물다가 긴급 귀국을 했다. 광주 방문 등의 일정은 아직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