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하는 것 자체가 꿈이었다. 손자와 함께 참가하려고 4년을 기다렸는데, 손자는 참가 신청 티케팅을 못해서 혼자 올라가게 됐다."
19일 오후 1시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제8회 스카이런(SKY Run) 출발선에서 대기 중이던 김용진(83)씨는 "여의도 63빌딩·인천 송도 포스코타워 수직마라톤 대회엔 참가했는데, 스카이런만 못해봤다. 하루 3만보씩 걸으면서 준비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용진씨는 올해 스카이런 최고령 참가자다.
스카이런은 롯데월드타워 123층·555m·총 2917개의 계단을 오르며 각자 한계에 도전하는 이색 스포츠 대회다. 대회는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2017년에 시작해 올해 8회째를 맞이한 이번 스카이런엔 엘리트·일반인·키즈 부문 등 총 2200명이 참가했다. 롯데물산이 주최한다.
장재훈 롯데물산 대표이사는 이날 개회사에서 "123층을 오르는 여정은 단순한 레이스를 넘어 스스로의 한계를 넘는 행복을 상징하는 여정이 됐다"며 "참가비는 몸이 불편한 어린이들의 재활을 돕는 데 기부할 예정"이라고 했다. 롯데물산에 따르면 참가비 전액은 롯데의료재단 보바스어린이재활센터 발전 기금으로 기부된다. 지난해까지 누적 약 1만2000명이 참가했다.
이번엔 엘리트 부문과 '키즈 스카이런' 부문이 신설됐다. 엘리트 부문은 해외 엘리트 선수와 역대 수상자가 경쟁하고, 키즈 스카이런은 보호자와 어린이가 함께 뛰는 경기다. 부모와 함께 뛰는 어린이 러너들은 연두색 번호표를 몸에 부착했다. 본격적인 대회 시작 전 참가자들은 출발점인 아레나 광장 근처에서 무릎 테이핑을 하고 준비운동을 하면서 몸을 풀고 있었다.
임동규(45)씨는 "올해 첫 출전인데 30분 안으로 들어오는 게 목표"라며 "대회 참가 신청을 해놓고 점심시간 때마다 회사 계단을 오르면서 연습했다"고 했다. 임씨의 배우자와 자녀들은 "아빠 화이팅"이라며 응원했다.
이색 복장의 참가자들도 현장 곳곳에 보였다. 해양경찰청 직원들은 근무복을 입고 참가했다. 짙은 회색 정장에 구두를 신은 상태로 피니시 라인을 통과한 참가자도 있었다. 위태성(44)씨는 "다른 마라톤 대회 때 정장을 입고 뛰는 선수들을 보고 영감을 얻은 후 작년 시그니처 63런(63빌딩 수직마라톤 대회)에서도 정장에 구두까지 신고 올라왔다"며 "시작부터 힘들었지만 목표한 기록 내엔 들어온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웨어러블 로봇을 착용한 참가자들도 보였다. 롯데쇼핑의 이커머스(전자상거래) 플랫폼 롯데온에서 선보인 '하이퍼쉘' 제품 시연에 나선 것이다. 브이디로보틱스의 하이퍼쉘은 허리·다리 부분에 착용해 걷기·계단 오르내리기 등에 도움을 주는 인공지능(AI) 웨어러블 로봇이다. 이번에 롯데온에 공식 입점했다. 롯데온 관계자는 "효율적인 움직임으로 운동할 수 있도록 돕는 제품의 특성을 직접 현장에서 확인해보고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 온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다. 롯데물산에 따르면 올해 일본·스페인·대만·말레이시아 등 20개국에서 온 수직마라토너·인플루언서 등이 참여했다. 스페인에서 온 패트리샤(Patricia, 41)씨는 "계단을 오를 땐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완주하고 나니 기쁘다"며 "기록보다는 경험 자체를 즐기는 중"이라고 했다. 그의 연인 마크(Marc, 41)씨도 "세계 각국의 러닝 대회를 돌면서 다양한 레이스에 참여하고 있다. 스카이런은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 도전"이라며 "몇 주 뒤에 있는 타이베이 101 수직마라톤 대회에도 참가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날 오전 9시 30분에 진행된 엘리트 부문에선 남녀 1~3등 시상식도 열렸다. 남녀 모두 1등은 일본인 선수들이었다. 이들에겐 타워 높이 555m를 상징하는 금 5.55g 기념 주화 등이 메달과 함께 수여됐다.
남성 부문에선 일본의 요지 와타나베씨가 16분 8초의 기록으로 1등을 차지했다. 안봉준(17분 17초)씨와 소웨이칭(17분 47초) 씨가 곧바로 그 뒤를 이었다. 여성 부문에선 일본의 요코 타테이시씨가 21분 19초로 정상에 올랐다. 김보배(22분 31초) 씨와 박다정(23분 44초)씨는 각각 2위와 3위를 기록했다.
시상식 직후 만난 와타나베(42)씨는 "100층부터는 고비였다. 이러다가 죽지 않을까 싶었다"면서도 "피니시 지점에 가장 먼저 도달할 수 있어서 기뻤다"고 했다. 타테이시(40)씨도 "목표 기록이 21분대였는데 도달하지 못해 아쉬웠다"면서도 "수직마라토너 세계 1등을 해보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2023년에 이어 올해 3등을 한 박다정(35)씨는 "올해로 스카이런만 4번째 참가"라며 "기록도 25분대에서 23분대로 줄여서 만족스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