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와 함께 '명품 4대장'으로 불리던 크리스챤 디올(Christian Dior)이 한국 시장에서 유독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2년간 샤넬, 루이비통, 에르메스가 나란히 역대급 실적을 갈아치운 반면, 디올은 2년 연속 매출과 영업이익이 모두 줄며 역성장했습니다. 업계에서는 명품 시장 내부의 양극화, 럭셔리 주얼리 중심으로 옮겨간 수요, 브랜드 이미지 훼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고 있습니다.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크리스챤디올꾸뛰르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7739억원, 영업이익 1292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전년 대비 매출은 18.1%, 영업이익은 43.0% 감소했습니다. 앞서 디올은 2024년에도 매출 9453억원, 영업이익 2266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각각 9.6%, 27.4% 줄어든 바 있습니다.

그래픽=정서희

경쟁 브랜드들과의 대비는 더욱 선명합니다. 샤넬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2조130억원으로 전년 대비 9.0% 늘었고, 영업이익은 3360억원으로 25% 증가했습니다. 루이비통코리아는 매출 1조8543억원, 영업이익 5256억원으로 각각 6.1%, 35.1% 늘었습니다. 에르메스코리아도 매출 1조1251억원, 영업이익 3055억원으로 전년보다 각각 16.7%, 14.6% 증가했습니다.

디올의 부진 배경으로는 우선 명품 시장 내부의 양극화가 꼽힙니다. 샤넬·에르메스·루이비통 등 최상위 하이엔드 브랜드는 거듭된 가격 인상에도 수요가 꾸준한 반면, 상대적으로 위상이 낮은 브랜드들은 경기 둔화 국면에서 소비 위축의 영향을 더 크게 받고 있습니다.

실제 페라가모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은 828억원으로 1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펜디코리아도 전년 대비 26.2% 감소한 877억원의 매출을 냈습니다. 명품 업계 관계자는 "명품 소비가 대중화된 상황에서 구매력 있는 소비자일수록 상징성이 더 강한 최상위 브랜드로 수요가 몰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명품 소비의 중심축이 최근 럭셔리 주얼리와 워치(시계)로 이동하는 점도 디올에 불리한 변수로 거론됩니다. 디올도 주얼리 라인을 전개하고는 있지만, 브랜드의 핵심 경쟁력은 여전히 여성 패션과 가죽제품 쪽에 더 가깝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최근 백화점 업계에서는 럭셔리 주얼리와 시계가 명품 매출 증가세를 주도하는 흐름이 뚜렷합니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본점 명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9.8% 늘었는데, 같은 기간 럭셔리 주얼리는 55.6%, 럭셔리 워치는 36.9% 증가해 전체 증가율을 크게 웃돌았습니다.

디올의 브랜드 이미지 훼손 역시 실적 부진의 한 배경으로 꼽힙니다. 디올은 2024년 6월 이탈리아 공급망을 둘러싼 노동 착취 의혹과 '원가 8만원 가방'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이탈리아 수사 당국 조사 과정에서 디올의 중국계 하청업체가 가방 1개를 약 53유로(당시 약 8만원)에 납품한 정황이 드러났고, 해당 제품이 매장에서는 2600유로에 판매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졌습니다.

여기에 불법 장시간 노동, 안전장치 제거 등 열악한 생산 환경 의혹까지 제기되며 브랜드 신뢰도도 흔들렸습니다. 명품 소비는 제품 자체보다 희소성, 장인 정신, 브랜드 서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만큼 이런 공급망 논란이 디올의 이미지와 소비 심리에 부담을 줬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한 디올 매장 앞을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뉴스1

다만 디올도 부진을 손 놓고 지켜보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 시장에서 브랜드 존재감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한 재정비에 나서고 있습니다. 디올은 지난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대형 아카이브 전시 'Christian Dior: Designer of Dreams'를 열고 브랜드 역사와 정체성을 재조명하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단순한 판매 확대보다 브랜드 서사와 감도를 다시 각인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 행보로, 실적 부진 속에서도 한국 시장을 중요한 전략 거점으로 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오프라인 채널 재정비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디올은 서울 성수동에 있는 콘셉트 스토어를 통해 최신 컬렉션을 선보이며 젊은 고객층과의 접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는 기존 매장을 1·2층 복층 구조로 확장하고, 브랜드의 모든 상품군을 갖춘 풀라인 매장(Full-line Store)으로 만드는 리뉴얼도 추진 중입니다.

과연 디올이 한국 시장에서 존재감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디올에겐 양극화된 명품 시장과 변화한 소비 흐름 속에서 다시 확실한 경쟁력을 보여줘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디올이 반등의 계기를 만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