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커머스(전자상거래) 시장의 '필승 공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과거 플랫폼들이 최저가와 물량 공세를 앞세워 규모의 경제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인공지능(AI)과 데이터를 활용해 고객의 숨은 취향을 찾아주는 '초개인화 큐레이션'이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상품이 넘쳐나는 시대에 소비자가 느끼는 선택의 피로감을 해소해 주는 플랫폼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카카오툴즈(Kakao Tools)에서 현대백화점 '더현대 하이(Hi)'의 쇼핑 정보가 제공되는 구동 화면 예시. /현대백화점 제공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유통 대기업들은 '발견하는 쇼핑' 체제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개인화 방식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개인화가 연령대나 구매 이력 등 제한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유사한 고객군에 맞춘 추천이었다면, 최근에는 고객의 행동과 상황, 맥락까지 반영하는 초개인화로 발전하는 추세입니다. 단순히 비슷한 소비자들끼리 선택한 상품을 보여주는 수준을 넘어, 지금 이 고객에게 가장 적합한 상품을 실시간으로 제안하는 방식입니다.

현대백화점은 최근 프리미엄 이커머스 플랫폼 '더현대 하이(Hi)'를 선보였습니다. 더현대 하이는 메인 화면에 할인이나 기획전, 광고 대신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 콘텐츠를 최우선 배치한 것이 특징입니다. 콘텐츠를 통해 고객이 자신의 취향을 자연스럽게 발견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눈에 띄는 점은 온·오프라인 데이터를 모두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백화점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구매 이력과 온라인 쇼핑 데이터를 통합 분석해 고객별 선호를 파악합니다.

예컨대 오프라인에서 와인잔을 구매한 고객에게 온라인으로 특정 기념일에 어울리는 프리미엄 와인이나 안주류를 추천하는 식입니다. 단순한 상품 제안을 넘어 소비자의 '맥락(Context)'을 읽어내는 정교한 큐레이션 단계로의 진화한 셈입니다.

현대백화점 측은 "고객이 검색하고 비교해야 하는 기존 이커머스 구조에서 벗어나 현대백화점이 엄선한 상품과 이야기를 통해 취향을 발견하고 선택하는 플랫폼을 구현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롯데온 패션 AI 화면 이미지./롯데온 제공

롯데온(ON)도 최근 앱과 홈페이지를 리뉴얼했습니다. 고객의 쇼핑 이력과 관심 데이터를 반영해 첫 화면이 개인별로 다르게 구성되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아울러 대화형 검색 서비스인 '패션 AI'를 도입했는데요, '결혼식 하객룩 추천해 줘', '하늘하늘한 블라우스 찾아줘' 같은 세부적인 요구사항까지 인식합니다. 키워드 중심의 딱딱한 검색에서 벗어나 AI와의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상품을 발견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키워드 중심의 딱딱한 검색에서 벗어나 AI와의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상품을 발견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AI는 상품 추천을 넘어 고객 서비스(CS)와 운영 영역으로도 확장되고 있습니다. 신선식품 강자인 오아시스마켓은 최근 AI 비서 '메이(MAY)'를 기반으로 한 고객 서비스 시스템을 도입하며 운영 체계 전환에 나섰습니다.

메이는 고객이 불편 사항을 음성이나 텍스트로 전달하면 최근 3일 이내의 주문 데이터를 바탕으로 관련 상품을 확인하고 즉시 처리 절차를 안내해 줍니다. 고객센터에 전화하면 AI비서 서비스를 연결할 수 있는데, 스마트폰에 '계란이 깨져서 왔어' 등 평소처럼 대화하듯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 메이가 최근 3일 이내에 주문한 상품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해 파손, 신선도 저하 등을 먼저 묻고 처리합니다.

오아시스마켓의 AI 비서 '메이(MAY)'. /오아시스 제공

이커머스 업계가 이처럼 큐레이션에 매달리는 이유는 '가격 경쟁'이 한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원하는 상품을 찾는 것 자체가 목표였지만 지금은 상품이 너무 많아 선택 자체가 어려운 시대가 됐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플랫폼 간 출혈 경쟁으로 가격이 하향 평준화되면서, 단순히 10원 더 싼 가격만으로는 고객의 충성도를 붙잡아둘 수 없게 됐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업계에서는 데이터 기반의 큐레이션 역량을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 플랫폼이 내 취향을 가장 잘 안다'는 정서적 연결고리를 만들어 고객을 가둬두는 '락인(Lock-in) 효과'를 노리는 것입니다.

현재의 AI는 단순히 '청바지'를 검색했다는 사실을 넘어 날씨, 장소, 선호 브랜드, 장바구니 담기 패턴 등 복합적인 시계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 있을 만큼 진화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판매자 중심의 효율성에서 구매자 중심의 편의성으로 이동하는 구조적 전환기"라며 "앞으로는 얼마나 많은 품목을 보유했느냐가 플랫폼의 생존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