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2주간 휴전 소식이 전해졌지만 화장품 용기 공급에 대한 불안감이 여전하다. 인디 브랜드를 운영하는 중소 화장품 업체들이 특히 그렇다. 화장품 용기의 원료로 쓰이는 나프타 가격이 급등한 가운데, 대량으로 주문하는 대기업 중심으로 용기 공급이 이뤄지고 있는 탓이다. 이런 상황 속 친환경이나 웰니스를 표방하던 뷰티 브랜드는 상대적으로 안도하는 분위기다.

화장품 용기의 핵심 원자재인 나프타 가격의 변동성이 커지자, 중소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생산 중단과 단가 인상 공지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3월 29일 서울의 한 화장품 매장./뉴스1

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중동 전쟁 20일 휴전 소식에도 플라스틱 소재로 된 화장품 용기의 공급이 원활치 않은 상태다. 인디 브랜드를 운영하는 A사 관계자는 "3주 내로 용기 주문을 다시 해야 하는데 종전 가격대로 공급이 되긴 어려울 것 같아 원가관리에 고민이 많다"며 "큰 기업들은 그나마 공급이 원활하겠지만 우린 주문 물량이 많지 않으니 우선 순위에 밀려서 발주하는 용기가 제때 올 지 모르겠다"고 했다. B사 관계자는 "아직은 물량이 남아 있어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면서 "패키징을 갑자기 바꿀 수는 없고 플라스틱 용기가 그나마 가장 저렴해서 가격을 맞출 수 있었는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가격 인상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소비자와 유통사에서 받아줄지 모르겠다"고 했다.

최근 국제 나프타 가격은 배럴당 140달러를 넘어섰다. 올해 3월 전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기 전까지의 가격은 평균 60달러 수준으로 2배가 넘게 올랐다. 나프타는 '플라스틱의 어머니'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의 핵심 원료다. 한국은 나프타 수요의 45%를 수입하고 이 중 77%가 중동에서 오기 때문에 이번 전쟁에 더 취약한 구조다.

아로마티카의 로즈 앱솔루트 라인. /아로마티카 제공

이런 와중에 플라스틱 용기 문제에서 자유로운 기업들도 있다. 일찌감치 재생 플라스틱으로 용기를 만들어온 일부 웰니스 코스메틱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아로마테라피 근간의 코스메틱사 아로마티카는 2021년부터 재생 원료로 제작된 투명 페트(PET·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를 화장품 용기에 적용하고 있다. 현재 아로마티카에서 판매되는 페트 용기 중 98%가 재생 원료로만 만들어지고 있다.

비건 뷰티 브랜드인 율립도 마찬가지다. 율립은 2017년 동물 실험을 반대하고 타르색소를 쓰지 않는 천연 유기농 립스틱으로 시작해 비건 립밤, 미니멀리즘 스킨케어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율립도 아마존 등 해외 플랫폼을 중심으로 비건 뷰티 제품을 홍보하면서 일찌감치 재생 플라스틱을 원료로 한 용기를 도입했다. 국내 인디 브랜드 토리든도 다이브인 세럼이나 수딩크림 용기에 50% 이상의 재생 플라스틱을 활용해 왔다. 토리든은 순하고 효과적인 성분을 강조하는 클린 뷰티 웰니스 스킨케어 브랜드다.

이들 브랜드의 공통점은 친환경·웰니스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이들 브랜드가 재생 플라스틱 용기를 활용하게 된 건 브랜드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지키기 위해 원가 일부를 희생하겠다는 경영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나프타를 넣은 플라스틱 가격은 재생 원료 플라스틱 대비 1.5~3배 정도 저렴하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인디 브랜드 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가격 혁신을 앞세우다 보면 아무래도 용기에 들어가는 비용도 아껴야 했다"며 "그러나 웰니스나 가치소비로 무장한 브랜드는 아무래도 이런 의사 결정 과정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일찍부터 대체 원료를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일부 뷰티 브랜드는 플라스틱 가격 급등을 계기로 패키징 다변화를 고민하고 있다. 재생 플라스틱뿐 아니라 종이(펄프), 대나무를 활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환경보호의 일환으로 모두 검토하던 것들이지만 가격 문제로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면서 "전쟁이 끝나더라도 고유가 시대가 이어진다고 하면 대체 용기로 바꾸는 경영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