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유통사들의 지배구조 개편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있다. 형식적인 절차를 모두 거쳤다고 할지라도 실질적으로 소액주주 권익 보호에 부합했는지를 살펴보겠다는 취지다. 국민연금이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행사한 의안 대부분도 소액주주 목소리가 차단된 구조 자체를 문제 삼았다.
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금융감독원은 이마트(139480)가 신세계푸드(031440)를 완전 자회사로 만들겠다는 계획에 제동을 걸었다. 금감원은 지난달 30일 이마트가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대한 정정 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이 증권신고서에는 이마트와 신세계푸드의 주식교환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이마트는 신세계푸드의 주식 104만2112주(지분 26.91%)를 이마트 주식과 1 대 0.5031313의 비율로 교환하고 신세계푸드를 완전 자회사로 편입할 계획이었다.
금감원의 정정신고서 제출 요구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이마트와 신세계푸드의 주식교환 비율을 계산할 때 신세계푸드의 급식사업부 매각 대금이 포함됐는지 여부다. 신세계푸드의 급식사업부는 지난해 8월에 1200억원 가격을 받고 급식·식자재업체 아워홈의 자회사로 매각됐다. 신세계푸드의 소액주주들은 신세계푸드가 급식사업부를 팔 때는 당시 주가순자산비율(PBR) 4배 수준으로 값을 쳐서 외부에 매각했고 이번에 이마트와 신세계푸드의 주식 교환 때는 청산가치의 반값 수준으로 진행됐다는 사실에 불만을 표하고 있다.
또 신세계푸드가 자진 상장폐지에 나섰다가 실패했다는 점도 소액주주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지난 1월 이마트는 신세계푸드 공개매수를 추진하면서 최종 지분율 73.1%를 확보하는 데 그치며 고배를 마셨다. 95%를 확보하지 못한 탓에 이마트는 신세계푸드의 자진 상장폐지에 실패했다. 이는 이마트가 제시한 주가가 너무 저평가됐다고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당시 이마트는 직전 1개월 대비 20%의 할증률을 적용해 주당 4만8120원을 제시했다. 이에 일부 소액주주들은 이 가격이 주가순자산비율(PBR) 0.59배에 불과하다는 입장이었다.
소액주주들의 목소리가 금감원의 판단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배경엔 지난해 통과된 2차 상법개정안이 있다. 대주주의 목소리만 반영된 채로 상장사의 경영 판단이 이뤄지지 못하도록 소액주주 권리를 강화하면서, 사외이사는 회사뿐 아니라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고려한 판단을 내리도록 했다.
김봉기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는 "이사는 회사뿐 아니라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고려해야 하며 특히 지배주주와 이해상충이 발생하는 거래에서는 더욱 엄격한 기준이 요구된다"면서 "이마트의 사례는 여전히 형식적 절차에 기대어 실질적 공정성 검증을 회피한 전형적 모습"이라고 했다.
이에 앞서 금감원은 현대백화점그룹의 지주사인 현대지에프홀딩스(005440)에게도 정정보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현대지에프홀딩스가 현대홈쇼핑(057050)과의 주식 교환비율을 1대 6.357로 산정하고 현대홈쇼핑을 100% 자회사로 만들겠다는 계획에 대한 것이었다. 금감원은 현대지에프홀딩스 측에 "정정보고서에 소액주주에 대한 이사 충실 의무를 이행했는지 여부를 다시 명확히 제시하라"고 했다.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정정보고서에 현대지에프홀딩스와 현대홈쇼핑 두 회사의 특별위원회가 마련돼 열리고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 이익보호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부분을 제시했고, 금감원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면서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 후 이에 따라 금융당국이 요구한 것에 대해 성실하게 응했다"고 했다.
유통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이 통과된 상법 개정안의 취지에 맞는 실질성을 기준으로 감독에 나서고 있다고 보고 있다. 예전처럼 형식상 요건을 모두 갖췄다고 해도 소액주주 의사에 반하는 부분이 있다면, 경영판단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한 방향과도 같은 맥락이다. 국민연금은 롯데지주(004990)의 '자기주식 보유·처분 계획'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혔다. 이 안건은 3차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되자 나온 안건이다. 재무구조 개선이나 신기술 도입 등 경영상 목적이 있을 경우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보유하거나 처분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국민연금은 이 안건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최대주주 찬성만으로 안건이 통과될 수 있는 구조에서 일반 주주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기 어렵다"면서 "자사주 소각 예외를 폭넓게 인정할 경우 주주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자본시장 업계 관계자는 "소액주주의 권리가 대주주의 이해관계 문제로 희생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형식적 요건을 갖췄다고 할지라도 실질적 피해가 입증된다면 당분간은 (기업이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 유통사 관계자는 "이해충돌이 있는 경우 어디까지 논의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이제부터 만들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당국의 취지에 공감하지만, 지나친 개입과 간섭은 경영판단에 따라 민첩한 대응이 필요할 때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