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마무리된 가운데, 자사주 소각에 나서지 않은 유통사들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주요 안건들은 무난히 통과됐지만, 자사주를 그대로 보유하려는 결정이 앞으로 주주 행동주의를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갈등의 불씨는 남았다는 평가다.
3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해 주주총회에서는 '자기주식 보유·처분 계획'을 통해 자사주 소각 의무의 예외를 확보하려는 기업들이 잇따랐다. 롯데지주(004990), CJ(001040), 한샘(009240) 등이 대표적이다.
롯데지주는 지난 24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자기주식 처분 및 보유 기준 신설 안건을 특별결의로 가결했다. 재무구조 개선이나 신기술 도입 등 경영상 목적이 있을 경우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보유하거나 처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CJ와 한샘 역시 자사주 처분 관련 근거 조항을 신설하며 유사한 방향을 택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최근 3차 상법 개정에 따른 대응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기업이 보유 중인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법 시행 이후 18개월 내 소각해야 한다. 3차 상법 개정안은 지난 6일부터 시행됐다. 다만 임직원 보상, 우리사주조합 출연, 기타 경영상 목적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하고 주주총회 승인을 받을 경우 예외적으로 보유나 처분이 가능하다.
기업들은 이러한 예외 규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자사주를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경영 전략 실행과 보상 체계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이런 계획은 매년 주주총회 승인을 받도록 돼 있어 주주 이익을 훼손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자본시장에서는 이런 구조가 사실상 대주주 의사에 따라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관계사와 대주주의 지분율을 고려하면 주주총회에서의 가결이 형식상 승인에 그쳐 실질적인 견제 기능이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국민연금도 롯데지주와 CJ의 자기주식 보유·처분 계획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국민연금은 "최대주주 찬성만으로 안건이 통과될 수 있는 구조에서 일반 주주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자사주 소각 예외를 폭넓게 인정할 경우 주주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이 같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관련 안건은 모두 가결됐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이 향후 주주 행동주의 확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한다. 자사주 활용 방식에 대한 불만이 누적될 경우, 소액주주들이 연대해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경영진을 상대로 적극적인 견제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자사주가 논란의 중심에 선 배경에는 그간 일부 기업들이 이를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활용해 온 관행이 있다. 인적분할 과정에서 자사주를 활용하거나, 경영권 분쟁 시 우호 세력에 넘기는 방식 등으로 특정 주주의 이익에 기여한 사례가 반복돼 왔다.
자사주를 둘러싼 법적 리스크도 커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2025년 7월 2차 상법 개정안 시행으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기존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되면서, 자사주 처분 과정에서 소액주주 이익을 침해했다고 판단될 경우 이사회 책임이 문제 될 수 있다. 특히 사외이사 역시 손해배상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자사주 활용 방안을 보다 투명하게 설계하고 주주와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롯데지주의 경우, 자기주식 처분 및 보유 기준 신설 안건에 대해 고정욱 롯데지주 대표가 주주 질문을 받으면서 상세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고 대표는 주주총회에서 "이번 정관 변경은 상법 개정으로 회사가 사업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정비하는 과정"이라며 "롯데지주 같은 경우는 전부 소각하게 되면 재무구조를 개선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회사의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쓸 수 있는 재원이 다 없어진다. 다만 롯데지주도 27.5% 중에서 우선적으로 5%는 소각한다"고 덧붙였다.
안효섭 세종 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은 "자사주 소각을 둘러싼 갈등은 당분간 불가피하다"며 "기업이 충분한 설명과 설득 과정을 거치지 않을 경우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