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계의 사업 지도가 바뀌고 있다. 본업인 의류를 넘어 화장품과 아이웨어 등 비(非)의류 카테고리로 영토를 넓히고 있다. 전통 패션 대기업들은 뷰티 브랜드를 키워 수익성을 강화하고, 온라인 패션 플랫폼은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거래액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 카테고리 다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소비 둔화와 의류 시장 성장 정체가 이어지자 업계 전반이 의류 중심 구조에서 체질 전환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서울 양천구 현대백화점 목동점에 문을 연 무신사 스탠다드 뷰티 매장./연합뉴스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패션 플랫폼 무신사는 자체 브랜드(PB) '무신사 스탠다드'를 통해 올여름 아이웨어(안경)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실제 제품이 출시될 경우 젠틀몬스터, 블루엘리펀트 등 국내 아이웨어 전문 브랜드와의 경쟁 구도가 형성될 전망이다.

이달에는 무신사 스탠다드 매장에 뷰티 전용 공간을 마련하는가 하면, '무신사 스탠다드 펫', '무신사 스탠다드 델리(식품)', '무신사 스탠다드 아웃도어' 등의 상표권도 출원했다. 회사 측은 상표권 선점 차원이라고 설명했지만, 업계에서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하고 있다.

카카오스타일이 운영하는 스타일 커머스 플랫폼 지그재그는 올해 뷰티 브랜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도입할 예정이다. 스킨케어·메이크업·헤어케어 분야에서 인디 브랜드 약 10개사를 선정해 1년간 집중 육성하는 방식이다. 단순 판매 채널 역할을 넘어 브랜드를 발굴·성장시키는 구조로, 플랫폼이 유통사를 넘어 브랜드 기획자 역할까지 확대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오프라인 중심 패션 대기업들도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섬의 럭셔리 스킨케어 브랜드 '오에라'를 통해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백화점과 면세점으로 접점을 넓히는 것은 물론, 서울 대치동에 문을 연 플래그십 스토어 '더한섬하우스(The Handsome Haus) 서울점' 6층에 뷰티 스파 '오에라 라 메종(Oera la Maison)'을 입점시켰다. 패션 브랜드가 보유한 고급 이미지를 활용해 럭셔리 화장품 시장으로 확장하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신세계인터내셔날 역시 자체 뷰티 브랜드 육성과 해외 니치 향수 수입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있다. 의류 중심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뷰티를 핵심 성장축으로 키우려는 전략이다.

오에라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 매장 전경. /한섬 제공

패션업계가 뷰티와 잡화에 집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익 구조에 있다. 의류는 계절과 트렌드 변화에 따라 재고 리스크가 크다. 원단·봉제·물류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유행에 민감해 재고 관리가 경영의 핵심이 된다. 시즌 내 판매하지 못한 상품은 30~50% 이상의 할인 판매를 해야 하므로 수익성이 급격히 떨어진다. 프리미엄 전략을 펼치는 브랜드의 경우 할인 판매를 최소화하는 대신 재고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구조다.

글로벌 컨설팅그룹 베인앤컴퍼니는 작년 12월 발표한 '명품 시장의 새로운 생존 전략'이라는 보고서에서 "의류 시장은 상위 고객층이나 특별한 행사 중심의 소비를 제외하면 정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최근 패션 브랜드들은 캡슐 컬렉션과 한정 발매, 신상품 중심 스토리텔링으로 트렌드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가죽 제품과 신발 부문은 가격 민감도가 높아지며 수요가 약화되는 모습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반면 뷰티와 아이웨어는 이용자의 방문 빈도를 높이는 핵심 카테고리로 평가된다. 의류는 구매 주기가 길지만 화장품과 안경은 교체 주기가 상대적으로 짧은 소모품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구매 빈도가 높​아질수록 플랫폼 체류시간과 거래액이 함께 증가하게 된다.

베인앤컴퍼니는 "아이웨어는 디자인 차별화와 젊은 소비자 선호를 기반으로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신규 고객이 브랜드에 처음 진입하는 '입문 카테고리' 역할을 한다"며 "뷰티 역시 성장세가 이어졌고 특히 니치 향수를 중심으로 수요가 강하게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특히 뷰티 제품의 경우 규격화된 패키지 덕분에 물류 효율이 높고 사이즈·색상에 따른 복잡한 재고 관리가 필요 없다는 점도 장점이다. 업계에서는 뷰티 산업의 마진율이 최대 30%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 전망도 밝다. 글로벌 컨설팅그룹 맥킨지는 '2025년 뷰티 시장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뷰티 산업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연평균 7%의 성장을 기록하며 4500억달러 규모로 커졌다고 전했다. 2030년까지 연평균 약 5%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 관계자는 "의류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에 접어든 만큼 고객의 일상 점유율을 높이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패션과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장하는 것은 플랫폼과 대기업 모두에게 매력적인 전략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