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산업발전법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제도가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된 유통 환경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새벽배송 허용을 포함한 규제 완화 논의가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본지는 유통산업발전법이 만들어낸 시장의 변화와 그 이면을 짚고 변화한 유통 환경에 걸맞은 규제의 방향과 상생의 해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 휴무일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뉴스1

전통시장 보호를 명분으로 도입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이 전통시장으로 소비자를 유도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주말에 마트가 문을 닫으면 소비자들은 시장 대신 쿠팡 등 온라인 쇼핑 애플리케이션(앱)을 켜거나, 규제를 받지 않는 식자재마트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프라인만 묶어둔 규제가 구조적 역성장을 고착화하는 역할을 해 왔다고 지적한다.

지난 2013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산법)에 따르면,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월 2회 의무휴업을 해야 하며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이 제한된다. 의무휴업일 지정은 지자체 조례로 운영되지만, 전통시장 장날과 행정 편의 등을 고려해 매달 둘째·넷째 주 일요일을 휴업일로 정하는 관행이 이어져 왔다. 2023년 이후 일부 지자체에서는 의무휴업일을 수요일 등으로 전환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도입을 주도한 유산법의 명분은 '대형 유통채널 영업을 제한하면 소비자가 전통시장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가정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의무휴업일에도 전통시장 이용이 뚜렷하게 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 전통시장 유입은 미미… 장보기 수요는 온라인으로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국경제연구원이 평일 의무휴업이 도입되기 전인 2022년도의 농촌진흥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수도권 1500가구가 전통시장에서 일요일마다 식료품을 구매한 평균 합산 금액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610만원)이 영업일(630만원)보다 적었다.

대형마트 휴업으로 인한 장보기 수요는 식료품 배송 경쟁력을 갖춘 쿠팡 등 온라인 이커머스(전자 상거래) 플랫폼으로 흡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마트가 영업하는 일요일의 온라인 식료품 평균 합산 구매액은 8640만원이었지만, 의무휴업일에는 8770만원으로 늘었다. 정책 목적인 전통시장 살리기보다 쿠팡을 위시한 온라인 살리기에 효과가 있었던 셈이다.

그래픽=정서희

유통업계는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경쟁 관계라기보다 같은 오프라인 생태계에 묶인 보완 관계라고 본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는 한 달에 두세 차례 대량 장보기나 생필품·공산품 구매를 위해 찾는 반면, 전통시장은 신선식품이나 반찬 등을 소량으로 수시 구매하는 용도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며 "소비자가 두 채널을 찾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대형마트 영업을 제한해도 온라인으로 소비가 빠져나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대형마트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유통업 가운데 대형마트만 매출이 4.2% 감소했다. 설과 추석이 포함된 1월과 10월을 제외하면 매월 역성장을 기록했다. 지난해 전체 유통업 매출에서 대형마트가 차지하는 비중도 9.8%로 낮아지며 처음으로 10% 아래로 떨어졌다.

SSM을 둘러싼 규제의 형평성 문제도 부각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전국 SSM 1464개 점포 중 개인 점주가 운영하는 가맹점 비중은 49%에 달한다. 업계 1위 업체인 GS더프레시는 가맹점 비율이 80%를 넘는다. 가맹점 점주는 사실상 소상공인이지만, 대기업 직영점과 동일한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

◇ 규제 사각지대 '식자재마트'… 의무휴업 벗어나 급성장

의무휴업 규제로 대형마트와 SSM의 피해가 누적됐지만, 영업 형태가 비슷한 식자재마트는 규제를 피해 몸집을 빠르게 키워 왔다. 식자재마트는 법적인 업태 명칭은 아니지만, 면적이 1000㎥ 이상 3000㎥ 미만이면서 대형 할인점 계열사가 아닌 점포를 일컫는 용어로 쓰인다.

본래 식자재마트는 식당·급식업체·자영업자 대상의 B2B(기업 간 거래) 도매형 매장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반 소비자 비중이 커지며 사실상 '동네 대형마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업체는 매장 면적을 3000㎡ 미만으로 유지하며 '대규모 점포'로 분류되는 것을 피하고 있다. 대형마트나 SSM에 적용되는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 규제를 벗어나기 위해서다.

그래픽=정서희

식자재마트는 업태 특성상 점포 수가 정부 통계에 잡히지 않지만, 2020년 정부 실태 조사에서 1803개로 파악된 바 있다. 업계는 유산법 사각지대를 적극 활용해 온 식자재마트 점포 수가 현재 2000개를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한다.

규제를 피한 식자재마트 운영사들의 실적은 우상향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장보고식자재마트의 매출은 2014년 1818억원에서 2024년 4503억원으로 약 10년 새 147.7% 늘었다. 같은 기간 세계로마트 매출은 743억원에서 1250억원으로 68.2% 늘었다. 식자재왕마트를 운영하는 푸디스트의 매출(감사보고서 기준)은 2020년 4545억원에서 2024년 8821억원으로 94.1% 증가했다.

◇ 새벽배송만 풀고 의무휴업은 그대로 두나… "근본적 손질 필요"

최근 김동아 민주당 의원은 대형마트와 SSM의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유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후 고위 당정청 협의회가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당 발의 법안에는 오프라인 매장의 의무휴업일 규제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소비자 이용 행태가 이미 온라인 중심으로 바뀐 상황에서, 오프라인만 묶어두는 규제는 온라인 쇼핑만 더 활성화하는 구조적 역성장을 고착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유민희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의무휴업 정책의 효과가 미미하다면 과감하게 개선하거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온라인, 대형마트, 전통시장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유통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그간 오프라인 유통 산업이 위축된 것은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불균형한 규제가 영향을 미친 탓"이라며 "유산법 개정 목적을 달성하려면 의무휴업 규제까지도 포함한 근본적인 손질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