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산업발전법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 휴업 제도가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된 유통 환경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새벽배송 허용을 포함한 규제 완화 논의가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본지는 유통산업발전법이 만들어낸 시장의 변화와 그 이면을 짚고 변화한 유통 환경에 걸맞은 규제의 방향과 상생의 해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우리가 그렇게 이야기할 때는 안 들어주더니..."

당정청이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산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홈플러스 내부에선 허탈함이 섞인 반응이 나왔다. 회사 존립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10년 넘게 홈플러스를 비롯한 대형마트 성장에 발목을 잡았던 규제 완화가 거론되고 있는 탓이다.

지난 1일 인천 계양구 홈플러스 계산점에 영업 중단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이날 임직원을 상대로 지난달 지급하지 못한 급여 중 절반을 지급한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12월 직원 급여를 분할 지급했는데, 한 달 만에 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설 명절 상여와 2월 급여 지급일도 맞추기 어렵다고 공지했다.

홈플러스 유동성 위기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유통가 안팎에선 낡은 규제가 조금 일찍 완화됐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0시~오전 10시)과 의무휴업을 규정한 유산법은 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도입된 후 13년째 유지되고 있다.

홈플러스는 일찍이 오프라인 점포를 도심형 물류센터로 활용하는 점포 거점 물류 모델을 도입했다. 이미 전국 대형마트·익스프레스 점포의 80%를 퀵커머스(주문 후 15분~2시간 내 목적지까지 즉시 배송하는 전자 상거래) 등 온라인 물류 거점으로 활용 중이다. 규제 완화로 새벽배송이 허용됐다면 점포 수가 많은 홈플러스는 추가 투자 없이도 빠르게 시장 변화에 대응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 규제에 막힌 오프라인 매장 물류거점 전략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유산법에 따른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은 홈플러스를 비롯한 대형마트가 경쟁하기 불리한 조건이었다.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는 영업이 금지되고, 매달 두 차례씩 문을 닫아야 했다. 전국 오프라인 매장을 물류 거점으로 활용해 배송을 확대하려던 전략이 제도적으로 막혔던 셈이다.

그래픽=정서희

그사이 쿠팡을 위시한 이커머스(전자 상거래) 업체는 주 7일·새벽 배송을 앞세워 소비자 수요를 선점했다. 특히 코로나19를 기점으로 온라인 장보기가 일상화되면서 점유율 격차는 더 벌어졌다. 비대면 소비가 급증한 시기에도 대형마트는 영업시간, 배송 제한에 묶여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못한 탓이다.

쿠팡의 연간 매출은 2023년 31조8298억원에서 2024년 41조2901억원으로 1년 만에 약 10조원 늘었다. 반면 대형마트 3사(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합산 매출은 2022년 이후 28조원대에 머무르고 있다. 대형마트 3사 점포 수는 지난해 368개로 2020년보다 26개 줄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쿠팡과 경쟁할 수조차 없었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유산법을 손봐야 한다"며 "그간은 두 손 두 발이 묶인 채로 쿠팡의 성장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홈플러스는 재무 악화 요인으로 ▲대형마트 의무휴업에 따른 매출 감소(약 1조원 추산) ▲영업시간 외 배송 금지로 인한 고객 이탈 ▲코로나19 기간 매출 감소 등을 꼽았다. 회사의 위기론이 번진 데는 홈플러스 대주주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의 경영 실패도 물론 있지만, 규제 여파로 대형마트 경쟁력이 훼손되고 시장이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된 영향도 적지 않다는 뜻이다.

◇ "유산법 개정해 공정한 경쟁 촉발해야"

국내 유통 시장 구조는 이미 크게 달라졌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전체 유통업체 매출에서 온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46.5%에서 2024년 50.6%로 상승했고, 지난해에는 역대 최고인 59%까지 올랐다. 반면 같은 기간 대형마트 비중은 17.9%에서 11.9%로 떨어졌고, 지난해에는 9.8%로 사상 처음으로 10%를 밑돌았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2010년부터 이커머스 시장이 빠르게 자리 잡았는데 법과 제도는 시대에 맞지 않는다"며 "시대 변화를 따르지 못하고 법과 제도를 무작정 유지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대로라면 온라인 비중이 향후 80%까지 올라올 가능성이 있다"며 "유산법 개정을 통해 오프라인 유통업이 공정한 경쟁 환경에서 사업을 영위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홈플러스 위기에는 단기 차익 실현에 집중한 사모펀드의 책임도 크지만, 장기간 이어진 규제로 인한 오프라인 업황 침체 여파 역시 무시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