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산업발전법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제도가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된 유통 환경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새벽배송 허용을 포함한 규제 완화 논의가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본지는 유통산업발전법이 만들어낸 시장의 변화와 그 이면을 짚고 변화한 유통 환경에 걸맞은 규제의 방향과 상생의 해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새벽배송 시장에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지난 8일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산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대형마트의 영업 행위를 금지한 현행법에 예외를 두는 게 핵심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대형마트 등의 점포를 중심으로 한 새벽배송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유통업계의 반응은 조심스럽다. 규제 완화 움직임은 환영하지만, 규제 완화가 실제로 이뤄질지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유산법이 대형마트 영업환경에 족쇄를 채우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던 민주당이 국회 절대다수를 차지한 상황인 탓이다.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던 의원들이 요직을 맡고 있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 유통업계 '기대 반, 불신 반' 이유는
1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대형마트 규제 완화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자마자 10년 넘게 사회적 논쟁이 됐던 대형마트의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에 대한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이 논란은 2010년대 이후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십수 년째 같은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규제 완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비관론도 나온다. 규제 완화의 운을 뗐을 뿐인데도 저항이 만만치 않은 상황인 탓이다. 소상공인연합회와 전국상인연합회,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는 지난 6일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유산법의 핵심인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제도가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지켜온 '최소한의 안전망'이자 '상생의 상징'"이라며 "정부의 이번 조치는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소상공인이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대형마트까지 새벽 배송에 나설 경우 그 결과는 '무차별 학살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도 "대형마트 새벽배송 허용을 위해 유산법을 개정하는 것은 골목상권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놓겠다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노조도 목소리를 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은 "대형마트까지 새벽배송 경쟁에 뛰어들게 하겠다는 것은 쿠팡이 만들어낸 참사를 교훈으로 삼기는커녕 그 구조를 다른 산업으로 확산시키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택배 노조도 "새벽배송 확대를 추진하는 것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정책의 후순위로 밀어내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대형마트 새벽배송 규제 완화 논의를 즉각 중단하라"고 했다.
대형마트 규제를 이끌어 왔던 민주당 인사들이 현재 요직 곳곳을 지키고 있다는 점도 규제 완화가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고 유통업계가 보는 이유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과거 새천년민주연합 의원 시절부터 대형마트에 대해 강경한 목소리를 내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유산법 도입과 개정에 큰 역할을 해온 을지로위원회의 초대위원장이기도 했다.
우 의원은 2013년 12월에 지자체가 특정품목을 '상생품목'으로 취급하면 대형마트가 이를 취급하지 못하게 하는 유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비록 농민단체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면서 입법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유통사의 골목상권 침해 문제를 공론화했다는 성과를 얻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19년 11월에도 우원식 의원은 "유통 자영업 현장을 0.1%의 대기업이 대부분 독식하고 있는 현실을 고치려 유산법 개정안이 진즉에 발의됐지만, 유통산업 경쟁력 저해를 이유로 단 한 발짝도 못 나아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소상공인·자영업단체로 구성된 전국 중소상공인 유통법 개정 총연대 등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여전히 을지로위원회가 있는데 새벽배송을 비롯한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가 제대로 완화될지 끝까지 봐야 알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청와대 정무수석 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긴 홍익표 전 민주당 의원도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를 주장해 왔다. 홍 의원은 2017년 9월 유산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발의하면서 복합쇼핑몰이나 아울렛도 규제안에 편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홍 의원은 "현행법은 중소상인의 보호를 위해 대규모 점포 등록 제한 및 대형마트·SSM 영업제한 등의 유통규제를 도입했으나, 중소상인의 경영 여건 악화는 지속되고 있다"라면서 "최근에는 대형 유통기업들의 복합쇼핑몰, 아울렛 등 이전에 없었던 초대형 유통 매장의 확대로 지역 상권 붕괴는 가속화되고 업태 간의 갈등은 점점 심화하고 있다"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들이 내세운 명분과 달리 유산법의 소상공인 영업 활성화 효과는 증명되지 않았다.
◇ '쿠팡만 키웠다'는 비판에 대형마트 규제 완화 움직임
당정이 갑자기 대형마트 규제 완화론을 들고나온 이유는 소상공인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입법한 규제가 이커머스(전자상거래) 기업 쿠팡만 키웠다는 비판이 나왔기 때문이다. 쿠팡은 지난해 11월 소비자 정보를 대규모로 유출하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내놓지 않았는데, 그 배경엔 쿠팡이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과점 지위를 영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최자영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지난 10여 간 오프라인 유통을 옥죄어 온 규제는 이커머스 업체들이 365일 24시간 사실상 규제 공백 상태에서 독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줬다"면서 "온라인 쇼핑의 비중이 미미하던 시절, 오프라인 간 대결 구도에 맞춰 설계된 규제가 오늘날에는 오히려 온라인 플랫폼의 독점 구조를 고착화하고 경쟁 자체를 차단하는 '낡은 족쇄'가 된 것"이라고 했다.
소상공인이 쿠팡의 갑질을 규탄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배달앱 시장에서 '무료배달'을 앞세워 높은 수수료와 배달비 부담을 입점업체에 떠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김우석 한국외식업중앙회장은 "쿠팡에게 외식업과 자영업은 그저 쓰고 버리는 일회용 부품에 불과한 상황"이라고 했다. 매출 규모 유지를 위해 쿠팡이츠를 안 쓸 수는 없지만 수수료와 배달비 부담에 자영업자들 부담만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입점업체 데이터를 활용해 자체브랜드(PB) 상품을 만들고 이를 밀어줬다는 의혹도 있다. 쿠팡에 입점한 셀러의 판매 기록(데이터)을 입수해 이를 쿠팡 PB상품으로 만들어 매출을 뺏어갔다는 주장이 국회 청문회를 통해 나왔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쿠팡 바로잡기 태스크포스(TF)'를 추진했던 이유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형마트 규제는 곧 소상공인의 성장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상황이 안타깝다. 대형마트 규제에 따른 유통업태와 소비자 후생의 변화상을 꼼꼼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도 "10여 년 전엔 대형마트가 가장 강력했고 쏠림이 심했는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현재 소상공인에게 가장 영향을 주는 유통업계의 메인은 대형마트가 아니라 이커머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