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인 오는 14일 밸런타인데이를 앞둔 유통가의 상품 진열대 모습이 사뭇 달라졌습니다. 초콜릿이 '주연'이던 기념일 공식에서 벗어나 굿즈·뷰티 등 취향을 공략하는 선물이 대거 등장한 것입니다. 업계에선 고물가로 선물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먹고 나면 사라지는 소비보다 오래 쓰거나 경험할 수 있는 상품을 찾는 흐름이 짙어졌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그래픽=손민균

1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주요 채널별 강점을 살린 상품을 중심으로 밸런타인데이 기획용 매대가 채워지는 모습입니다. 초콜릿 상품 자체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각 유통 채널이 자신 있는 분야에서 취향을 반영한 상품을 앞세워 기념일 수요를 흡수하려는 계산이 깔린 셈이죠.

대표적인 곳이 편의점입니다. 편의점 4사(GS25·CU·세븐일레븐·이마트24)는 올해 밸런타인데이 선물 세트를 캐릭터 굿즈 중심으로 구성했습니다. 키링·파우치·텀블러·액세서리 등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상품을 전면에 배치해 '먹고 끝나는 선물' 대신 '일상에 남는 선물'을 강조하는 전략입니다.

GS리테일(007070)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는 몬치치·몽모·셔레이드쇼 등 인기 캐릭터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선물 세트를 선보였고,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와 캐치티니핑·울트라맨·옴팡이 등 다양한 연령대의 취향을 아우르는 제품군을 준비했습니다. BGF리테일(282330)이 운영하는 편의점 CU는 스누피·포켓몬 등 레트로 감성을 지닌 캐릭터를 앞세워 아크릴·플립북 키링, 키캡 같은 소품부터 리유저블백·패딩 파우치·블루투스 스피커까지 제품군을 늘렸습니다.

세븐일레븐은 헬로키티·위글위글·이나피스퀘어 등과 협업해 초콜릿 외에도 텀블러·파우치·키링 등 굿즈 품목을 강화했고, 이마트24는 캐릭터 슈아토야 IP를 활용한 단독 기획세트로 차별화에 나섰습니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캐릭터 상품 매출 비중이 20~25%일 정도로 매출 성장을 이끌었다"며 "고물가 상황에서 초콜릿처럼 먹고 나면 사라지는 소비보다 일상에 남는 선물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커지면서 이를 캐릭터 IP와 연계한 상품으로 확대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서울 시내 한 편의점에 초콜릿이 진열돼 있는 모습. 초콜릿 외에도 인형 굿즈 등도 같이 매대에 올라와 있다. /뉴스1

호텔업계는 '선물 이상의 하루'를 설계한 숙박·미식 패키지로 연인 고객 공략에 나섰습니다. 밸런타인데이를 경험 중심 소비로 재구성한 움직임입니다. 조선호텔앤리조트가 운영하는 웨스틴 조선 서울과 그랜드 조선 부산은 밸런타인데이 한정 스페셜 케이크·꽃 상품을 선보였습니다. 메이필드호텔 서울은 숙박과 디너 코스·파베 초콜릿 선물 등을 함께 구성한 밸런타인데이 시즌 '스위트 라이크 초콜릿(Sweet Like Chocolate)' 패키지를 준비했습니다.

특히 올해 밸런타인데이가 토요일인 점을 고려해 여행·체류 소비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면세업계도 '밸런타인데이 특수'를 정조준했습니다. 신세계면세점은 '해피 밸런타인' 기획전을 열고 프리미엄 향수·뷰티 브랜드 제품을 최대 40% 할인 판매하고 있습니다. 딥티크·산타마리아노벨라·메종 마르지엘라 등 니치 향수 브랜드를 중심으로 합리적인 가격대를 제시해 '스몰 럭셔리' 수요를 본격적으로 공략하겠다는 것이죠.

업계는 이런 변화가 일시적인 이벤트·기념일 대응을 넘어 소비 구조 변화의 한 단면이라고 봅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고물가로 소비자들이 선물에 쓰는 돈의 효용을 따지기 시작하면서 소모성 선물보다 굿즈나 제품처럼 남는 상품이나 호텔 패키지처럼 특별한 경험으로 수요가 분산되는 분위기"라며 "밸런타인데이도 초콜릿 단일 품목 중심에서 채널별 강점을 살린 취향형 상품 구성 경쟁으로 바뀌는 추세"라고 했습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고물가 상황에서 같은 돈을 쓸 거라면 오래 쓰거나 기억에 남는 경험을 주는 소비가 상대적으로 더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라며 "소비자의 취향과 감성을 자극하는 상품을 중심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기념일 소비 성격 자체가 바뀌고 있는 셈"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