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합동조사단은 전수조사가 원칙이다. 기업 스스로 조사해 자체 발표하는 방식은 조사 과정의 무결성이나 분석 결과의 신뢰성을 외부에서 검증하기 어렵고, 용의자 자백 중심 조사에 머무는 구조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결국 '셀프 조사'는 구조적으로 논란이 불가피하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쿠팡 해킹 및 개인정보 침탈 사고에 대한 국회 좌담회'에서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전날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이하 개보위)가 "쿠팡이 총 16만5000건의 개인정보 유출을 신고했다"고 밝힌 직후 열린 좌담회인 만큼, 쿠팡의 자체 조사 방식의 타당성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쿠팡 해킹 및 개인정보 침탈 사고에 대한 국회 좌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최우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네트워크정책실장,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이동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디지털위협대응본부장, 박세준 티오리 대표. /민영빈 기자

이날 좌담회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주최했다. 발제와 좌장은 김 교수가 맡았다. 최우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네트워크정책실장, 이동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디지털위협대응본부장, 박세준 티오리 대표 등도 참석했다. 다만 민병기 쿠팡 정책협력실 부사장(대관 총괄)은 좌담회에 불참했다.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 민관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국회 일정엔 참석하지 않겠다는 게 불참 사유다.

참석자들은 쿠팡의 셀프 조사 적절성 여부부터 따졌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작년 12월 25일엔 3000건만 유출됐다고 하더니 어제(5일) 16만5000건 유출됐다고 한다"며 "기업의 자체 발표를 그대로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기업 발표만 반복되는 상황에서 국민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나"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최 의원은 한미 외교·통상 문제를 언급하면서 "만약 아마존(Amazon)에서 미국인 개인정보가 대규모로 유출돼 중국으로 넘어갔다면 미국 정부·의회도 조용했겠는가. 국민의 민감 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안은 기업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와 직결된 사안"이라고 했다. 이어 "미국에는 외국인이 국민 핵심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제한하는 제도가 있지만, 우리나라엔 이와 같은 법적 장치가 없다"며 법·제도 정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쿠팡 본사. /연합뉴스

앞서 전날 개보위는 쿠팡으로부터 "총 16만5000건의 개인정보가 외부로 유출됐다"는 신고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쿠팡은 지난해 12월 25일 자체 조사 결과를 통해 "실제 외부 유출은 3000건에 불과하고, 3400만건에 달하는 개인정보는 중국 국적 전직 개발자의 컴퓨터에 저장돼 있었을 뿐 외부 유출은 없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불과 한 달여 만에 신고 규모가 16만건 이상으로 늘어나자, 당시 자체 조사 결과의 신뢰성에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현재 개보위는 정확한 침해 경로와 관리·보호 조치의 적정성에 대해 추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정부 측도 이날 좌담회에서 조사 절차의 동일성과 공정성을 강조했다. 최우혁 과기정통부 실장은 "SKT·KT 개인정보 유출 사고 역시 수개월에 걸친 정밀 조사를 통해 결과를 공개해 왔다"며 "쿠팡도 국내외 기업을 가리지 않고 동일한 기준과 절차로 조사 중"이라고 했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 임시 대표가 6일 오후 마포구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반부패수사대에서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 관련 2차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뉴스1

현재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둘러싼 파장은 정부와 국회, 사법 당국을 넘어 해외로까지 확산하는 양상이다. 이날 오전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 임시 대표는 국회 증언 위증 혐의로 경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 전날 로저스 임시 대표는 임직원에게 이메일을 통해 "정부 조사 절차에 성실히 임해 사태가 조속히 정리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달라"며 자료 제출과 대면 인터뷰 등 조사 협조를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의 쿠팡 사태 대응 기류도 변화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초 지난달 27일 출범을 예고했던 '쿠팡 바로잡기 태스크포스(TF)'를 이달 2일로 순연하겠다고 밝혔다가, 최근 쿠팡 사태가 한미 외교·통상 갈등으로 비화하는 모습을 보이자 출범 시기를 잠정 연기했다.

미국 의회도 쿠팡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 하원 법사위원회는 한국 정부의 쿠팡 조사·제재가 미국 테크(Tech·기술) 기업에 대한 차별적 규제에 해당하는지를 확인하고자 공식 조사에 착수했다. 법사위는 로저스 대표에게 증언을 요구하는 소환장을 발부하고 한국 정부와의 소통 기록 제출도 요청한 상태다.

이처럼 미국 의회가 쿠팡 사태와 한국 정부를 직접 겨냥해 조사 절차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우리 정부는 '미국 관세 인상 등 한미 외교·통상 갈등은 쿠팡 사태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재 개보위와 민관합동조사단은 쿠팡의 추가 유출 신고를 토대로 정확한 침해 경로와 정보 접근 방식, 관리·보호 조치의 적정성을 조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