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물가 안정 목적으로 미국산 달걀을 직수입해 시장에 유통하고 있다. 투입 비용이나 실제 수급 현황을 고려할 때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유통 업계에는 가격 조정을 압박하는 일종의 시그널(신호)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가 지난달 31일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미국산 백색 신선란' 1차 물량 3만6000판(30구)은 지난 2일 기준 약 70%가 소진됐다. 전날부터 2차 물량인 9000판 판매도 개시했다. 이를 개수로 환산하면 총 135만개다.

지난 1일 서울 강서구 홈플러스 강서점에 '미국산 백색 신선란'이 판매되고 있다./뉴스1

앞서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달 22일부터 두 차례에 걸쳐 미국산 신선란을 224만개(7만5000판)를 국내로 들여왔다. 이 가운데 60%는 대형 마트(홈플러스)를 통해 판매되고, 나머지 40%는 외식이나 급식 등 식자재 업체로 공급된다. 오는 6일이면 전체 물량 공급이 끝날 전망이다.

설 연휴를 앞둔 소비 대목이 맞물린 만큼 이달 말까지 수입 달걀은 대부분 소진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들어온 달걀의 산란일은 1차 물량이 지난달 20일, 2차 물량이 23~24일로 국내 달걀 소비 기한(45일) 기준도 모두 충족한다.

미국산 달걀은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홈플러스에서 판매 중인 미국산 백색란 가격은 한 판에 5990원으로 국내산 특란 평균 소매가(7229원)보다 17% 이상 저렴하다.

올해 들어 국내 달걀 가격은 고공 행진했다.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 확산 우려가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기준 달걀 한 판(특란 30구) 소비자 가격은 7213원으로 전년(6067원) 대비 약 18.9% 올랐다.

농식품부는 향후 AI로 산란계 살처분이 확산하면 달걀 값이 추가로 뛸 가능성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미국산 물량을 확보했다는 입장이다. 통상 산란계 살처분 규모가 400만마리를 넘으면 달걀 생산량이 줄고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하지만 대한산란계협회를 중심으로 농가에선 반발이 커졌다. 항공 직송 등 물류비를 포함해 수십억 원 예산을 투입할 만큼 달걀을 수입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협회는 정부가 달걀을 한 판당 약 2만7000원에 수입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이번에 수입된 달걀 224만개는 국내 하루 평균 달걀 생산량(약 5000만개)에 비하면 5%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우려했던 대규모 AI 살처분도 아직 발생하지 않은 만큼, 국내 생산 물량만으로도 수급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다만 정부가 비용 부담을 감수하며 미국산 달걀을 수입해 저가에 공급한 배경에는 유통 시장을 겨냥한 의도가 깔려 있다는 해석이다. AI 확산 우려와 가격 상승 기대가 겹치며 대형 마트 등 유통업체들이 재고를 충분히 풀지 않자, 일시적으로 가격이 급등했고 정부가 이를 견제할 목적으로 일종의 '시그널'을 던졌다는 것이다.

효과도 일부 나타났다. 미국산 달걀이 시중에 풀린 이후 국내 달걀 가격은 7200원대에서 6200원대로 내려왔고, 대략 일주일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수입 비용 부담은 크지만, 가격 하락으로 인한 소비자 편익을 고려하면 후생 효과는 오히려 컸다는 분석이다.

유통 과정에서 달걀값이 과도하게 뛴다는 점에 대해서는 농가 역시 일정 부분 공감하고 있다. 대형 마트가 대기업 계열 등급란 위주로 판매하면서 높은 마진 구조를 형성해, 농가 출고 가격과 소비자 가격 간 괴리가 커졌다는 지적이다. 현재 국산 특란 생산자 판매가는 한 판당 4800~4900원 수준에 불과하다.

사실상 미국산 달걀 수입은 수급 물량을 조정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기보다, 유통 시장 심리를 자극해 가격을 단기간에 조정하는 일종의 '응급 처방'인 셈이다. 소량의 수입만으로도 가격이 빠르게 조정된 점은 달걀 값이 실제 수급보다 시장 심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당분간 AI 확산 상황, 달걀 가격 동향 등을 주시하며, 추가 대책을 검토할 방침이다. 필요할 경우 미국 외 유럽, 중남미, 동남아 등 대체 국가 수입도 고려한다는 입장이다. 과거 AI 발생 당시 정부는 미국산 외에 스페인산 달걀을 수입한 바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관계자는 "3월까지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 추가 수입 가능성을 열어두되, 물량에 대해서는 신중히 판단할 것"이라며 "소비자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막는 동시에 농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균형 잡힌 대응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