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가 회생계획안에서 제시한 3000억원 규모의 DIP(긴급운영자금) 조달 시점이 늦어지면서 홈플러스의 회생 시나리오가 존속의 위기에 처했다. 당초 홈플러스는 지난달까지 DIP를 조달한 뒤 직원 임금 지급과 납품 대금 결제를 마무리하고 영업을 정상화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DIP 대출 참여를 요청받은 메리츠금융그룹과 산업은행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자금 유입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전문가들은 회생의 '골든 타임'을 놓친 홈플러스가 사실상 청산 수순으로 향하고 있다고 본다.
1일 홈플러스와 유통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수개월 전부터 각종 세금과 공과금을 체납하고 있다. 납품 대금 지연이 반복되면서 거래처 납품률은 평소의 45% 수준으로 떨어졌고, 매장마다 매대가 비어가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직원 월급을 분할 지급한 데 이어, 지난달 급여 지급은 무기한 유예됐다. 최근에는 본사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절차에도 돌입했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12월 29일 서울회생법원에 '구조 혁신형 회생계획안'을 제출했다. 여기에는 ▲DIP 3000억원 투입 ▲기업형슈퍼마켓(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분리 매각 ▲부실 점포 41곳 정리 ▲인력 효율화를 통한 재무구조 개선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 가운데 DIP 조달은 홈플러스 회생의 명운을 가를 '생명줄'로 꼽힌다. 홈플러스 최대주주 MBK파트너스는 지난달 16일 "정상화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긴급운영자금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긴급운영자금대출이 성사되면 회생 가능성은 한 단계 높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홈플러스 경영진은 DIP와 홈플러스익스프레스 매각 대금을 통해 올해 경영 상황을 개선한다는 구상이다. 조주연 홈플러스 대표는 지난달 21일 국회 긴급 좌담회에서 "회생절차에 돌입하기 전 홈플러스의 1년 운영 자금은 7000억원 규모였다. 예전보다 축소된 점포 규모를 고려하면 올해는 6000억원 정도로 운영이 가능할 것"이라며 "DIP 3000억원에 더해 익스프레스 매각으로 3000억원이 유입되면 충분히 살릴 수 있는 회사"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MBK는 DIP 조달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1000억원을 부담하는 조건으로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과 산업은행이 1000억원씩 대출에 참여하는 형태를 제안했다. 그러나 메리츠는 DIP 대출 지원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고,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도 거리를 두는 분위기다.
메리츠 측은 지난달 6일 홈플러스의 회생 계획안에 '기타' 의견을 제출하면서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큰 경우 회생절차를 폐지하고 파산으로 이행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DIP 조달을 전제로 한 회생 계획에 유보적인 입장을 드러낸 셈이다.
홈플러스는 DIP 확보에 실패할 경우 회생 시나리오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앞서 조 대표는 "1월 내에 긴급운영자금이 확보되지 않으면 직원 급여는 물론 상품 대금 지급도 불가능해져 회생 시계가 멈춰버릴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밝힌 바 있다.
홈플러스 직원대의기구인 한마음협의회도 지난달 30일 탄원서를 통해 "한시라도 빨리 긴급운영자금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회사 정상화는 요원해진다"며 "지금 직원들이 겪고 있는 이 고통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대출이 즉시 실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현 상황에서 홈플러스가 당장 현금을 확보할 방법은 홈플러스익스프레스의 신속한 분리 매각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홈플러스 측이 과거보다 매각 눈높이를 낯추면서 성사 가능성은 생겼다는 평가다.
이종우 아주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 한차례 홈플러스익스프레스 매각이 추진됐을 때 거론됐던 몸값은 8000억원 수준이었으나, 지금처럼 3000억원까지 몸값이 낮아진 상황에서는 관심을 가지는 기업들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자금이 유입된다고 해도 이미 홈플러스가 회생의 '골든 타임'을 놓친 상황에서 사업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홈플러스는 자금이 유입되더라도 심폐소생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MBK가 정말 홈플러스를 살리고 싶었다면 자금을 투입해야 할 시점이 분명이 있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청산 수순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MBK가 매장 정상 운영만큼은 끝까지 포기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미 홈플러스는 제품 조달 경쟁력 약화로 고객 이탈이 심화하고 있다"면서 "결국 돌이켜보면, MBK는 처음부터 시간을 끌다가 홈플러스를 청산하려는 의도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