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롯데렌탈의 매각을 불허하면서 호텔롯데의 부채와 계열사 지원 현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롯데렌탈이 사모펀드로 매각되면 호텔롯데로 약 1조원의 자금이 유입될 예정이었기 때문입니다. 호텔롯데는 대규모 자금 유입을 염두에 놓고 롯데건설이나 롯데글로벌로지스의 자금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왔습니다.
2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사실상 호텔롯데는 최근 몇 년간 롯데그룹의 든든한 자금 지원군 역할을 해왔습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으로 호텔롯데는 롯데건설의 유동화 특수목적법인에 1500억원 규모의 후순위 대출을 제공했습니다. 또 프로젝트샬롯의 1조원이 넘는 이자 자금에 대한 보충도 약속했습니다. 프로젝트샬롯은 만기가 임박한 롯데건설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유동화증권을 매입해 단기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조성된 2조원대 규모의 공동 펀드입니다.
롯데건설에만 지원해 준 것은 아닙니다. 롯데그룹의 물류 계열사 롯데글로벌로지스의 상장 철회로 재무적 투자자(FI)가 풋옵션(매도권리)을 행사하기로 하자, 롯데지주와 호텔롯데가 이 풋옵션을 소화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에 들어간 호텔롯데의 자금은 약 800억원 수준입니다. 롯데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불리는 롯데바이오로직스에도 2000억원 넘는 돈을 출자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지원에 나서기 위해 호텔롯데는 열심히 돈을 벌면서 차입에 나서고 있습니다. 호텔롯데는 지난해 12월 중순 열린 이사회에서 올해 사채 발행 한도를 1조5000억원으로 결정하고, 지난 21일엔 1000억원 규모의 공모채 수요 예측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신종자본증권도 발행했습니다. 신종자본증권이란 주식과 채권의 성격을 함께 가진 하이브리드 증권인데, 회계상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인정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호텔롯데의 신종자본증권 발행 조건입니다. 이 증권은 발행금리 연 5.3%에 발행됐고 2027년 6월부터 금리가 2.0%포인트 오르게 설정됐습니다. 이후로는 매년 0.5%포인트씩 이자가 가산됩니다. 최고 8.8%까지 금리가 오를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 발행 조건을 봤을 때 호텔롯데와 롯데그룹은 롯데렌탈의 매각이 불허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굉장히 기간이 짧은 스텝업 구조로 발행됐기 때문입니다. 스텝업 구조란 발행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이자율이 자동으로 상향 조정되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초기에 낮은 이자율로 자본을 조달해 부채비율을 낮추고 재무구조를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발행하는 것이라 이자율이 올라가는 시점엔 대부분 상환하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이 때문에 보통 이자율이 5년 정도 뒤에나 오르는 구조로 만드는데 호텔롯데는 다른 곳들과는 달리 1년 반 뒤부터 이자율이 올라가게 설정했습니다. 그 사이에 대규모 자금이 유입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만들어진 구조로 보인다는 게 투자은행 업계 관계자들의 말입니다.
현재 신용평가사들은 호텔롯데의 신용등급을 AA-로 매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호텔롯데의 차입금 의존도는 실상 BBB급 수준의 기업들과 어깨를 견준다는 것이 신평사 관계자들의 말입니다. 호텔롯데의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총 차입금은 8조3000억원대고 이 중 만기 1년 미만의 단기차입금은 4조5000억원대입니다. 비율상 50%를 약간 넘어가는데, 적정 단기차입금 비중을 통상적으론 50%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이주원 한국기업평가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계열사) 투자 부담이 있지만 자산 매각을 바탕으로 차입 부담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데 롯데렌탈 매각이라는 굵직한 자금 조달 건이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호텔롯데나 롯데그룹이 발 빠르게 나서줘야 하는 상황에 몰렸습니다.
이에 대해 호텔롯데 관계자는 "홍대L7을 매각해 2500억원을 확보했고 다각적으로 비핵심자산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롯데그룹도 "유동화가 가능한 우량 자산을 포함해 총 53조원 규모의 부동산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약 13조원 수준의 현금성 자산을 확보하고 있다"면서 롯데렌탈 매각 불허가 그룹의 유동성 위기설 등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를 둘러싸고 호텔롯데의 상황에 대해 동정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롯데렌탈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매각 불허 배경에는 사모펀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롯데렌탈 지분 매각을 불허하면서 "일정 기간 후 매각을 목표로 하는 사모펀드 특성상 가격 인상 제한 등과 같은 행태적 조치의 영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2015년 이후 10년간 롯데그룹에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면서 "롯데렌탈 매각이 불허될 것으로 생각하진 못했고, 롯데그룹에서도 이를 예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