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부터 오는 7일까지 중국을 국빈 방문 중인 가운데, 국내 유통업계는 한중 관계 개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과거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따른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으로 현지 오프라인 사업을 대거 축소해야 했던 유통업계는 최근 패션, 관광 등 일부 분야를 중심으로 중국 시장을 다시 주목하는 분위기다.
다만 양국 관계가 개선돼도 여전히 정치·외교적 변수가 남아있고, 침체된 유통 경기 등을 고려하면 롯데와 신세계(004170) 등 대기업이 중국 오프라인 시장에 재진출하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5일 재계와 대통령실에 따르면, 한중 양국은 이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을 계기로 경제·산업 전반 등에서 10건이 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협력 범위를 넓힐 예정이다. 이번 중국 방문에는 삼성·SK(034730)·현대차(005380)·LG(003550) 등 4대 그룹 총수를 포함한 200명 규모의 경제사절단도 동행했다. 롯데그룹에서는 신동빈 회장을 대신해 정승원 롯데정밀화학 대표가, 신세계그룹에서는 장승환 G마켓 대표가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업계는 이번 방문에 따른 양국 관계 향방을 주시하고 있다. 유통 기업들은 과거 사드 배치를 계기로 한 중국 정부의 경제 보복에 직격타를 맞은 바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롯데그룹이다.
2016년 9월 한국 정부는 사드 부지로 경북 성주군에 있는 롯데 골프장을 지정했고, 롯데는 해당 부지를 국방부가 보유한 남양주 군부지와 맞교환했다. 그러자 중국 정부는 같은해 11월부터 롯데제과(현 롯데웰푸드(280360)), 롯데마트, 롯데케미칼(011170) 등 중국에 진출한 롯데 계열사들에 대해 고강도 세무조사와 위생안전 점검, 소방 점검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듬해 중국 정부는 중국 내 롯데마트·수퍼 112개 점포 가운데 74곳에 대해 일제히 영업정지 명령을 내렸다. 나머지 매장 가운데 13곳도 불매운동 등으로 인한 영업부진을 이기지 못하고 자체 휴업에 들어갔다. 초기에는 일시적 조치로 여겨졌던 영업정지가 1년 넘게 풀리지 않자, 롯데는 결국 현지 마트 사업을 통째로 접을 수밖에 없었다.
신세계그룹의 이마트(139480) 역시 중국 사업에서 고배를 마신 바 있다. 이마트는 1997년 상하이 1호점을 통해 국내 대형마트 가운데 처음 중국 시장에 진출했고, 2010년 한때 매장을 26곳까지 늘렸다. 그러나 현지화 실패 등으로 손실이 누적되면서 매장을 점차 줄여나갔고, 2017년 사드 보복을 계기로 남은 6곳의 매장까지 철수하며 20년 만에 중국 사업을 완전히 접어야 했다.
최근 국내 유통업계는 패션과 관광 등 일부 시장을 중심으로 중국을 다시 주목하는 분위기다. 무신사는 지난해 12월 상하이에 무신사 스토어, 무신사 스탠다드 매장을 연달아 열고 중국 오프라인 시장에 진출했다. 무신사는 올해 상반기에도 난징둥루, 쉬자후이, 항저우 등 3개 지역에 추가 출점을 예고했고, 향후 5년간 국 내 매장을 100개 이상으로 늘린다는 목표다.
패션그룹형지 역시 형지엘리트(093240)를 통해 중국에서 교복 등 패션 사업을 영위한다. 최근에는 코스맥스(192820)와 MOU를 체결하고 중국 뷰티 시장 진출도 선언했다. 무신사와 패션그룹형지는 이번 경제사절단에도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관광·면세 산업은 지난해 9월부터 시행된 중국인 단체관광객 무비자 입국 조치로 온기가 돌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달 발표한 '2025년 11월 한국관광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약 37만8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6.9% 늘었다. 중국인 관광객 수는 코로나 이전인 2019년 11월과 비교해 75% 수준까지 회복됐다.
신세계면세점 명동점은 무비자 입국 제도 시행 후 한 달 만에 중국인 방문객 수가 지난해 동월 대비 90% 급증했고, 매출도 40% 늘었다. 호텔과 카지노 업계도 실적 개선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삼정KPMG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중국인 인바운드가 확대될 경우 서울 관광호텔 시장의 객실 가동률과 평균 객실단가가 동반 상승하고, 이는 투자수익률 개선과 자산가치 상승을 동시에 견인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향후 정치·외교 변수에 따라 한한령이 언제든 재연될 수 있어 과도한 기대를 경계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국내 유통 경기 침체 등을 고려하면 유통 대기업들이 과거처럼 중국 오프라인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까르푸, 월마트 등 글로벌 대기업들도 이미 중국 사업을 접었다"며 "한국 유통 대기업들의 중국 재진출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