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가 지난 3월 4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 회생 절차를 신청한 뒤 9개월 넘게 인수자를 찾지 못하면서, 통매각(일괄 매각) 대신 사업부 분리 매각으로 방향을 틀었다. 상대적으로 인수 매력이 있는 기업형 슈퍼마켓(SSM)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따로 매각하고, 회생 계획 인가 이후 본체에 대한 인수합병(M&A)을 다시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홈플러스 노동조합 측도 최근 일부 구조조정 가능성을 수용하며 한발 물러선 만큼, GS(078930)와 롯데, 이마트(139480) 등 기존 수퍼마켓 사업자들이 홈플러스익스프레스 인수전에 참전할지 업계의 관심이 모인다.

서울 시내의 한 홈플러스 매장. /뉴스1

26일 유통 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이달 29일을 기점으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 작업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서울회생법원 회생4부(재판장 정준영 법원장)는 지난 24일 홈플러스 회생 신청 사건과 관련한 절차협의회를 열고, 홈플러스 측으로부터 '익스프레스 분리 매각'과 '인가 후 M&A'를 포함한 회생 방안을 보고받았다.

이곳에서 홈플러스 관리인들은 참석자들에게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사업부 분리 매각 및 인가 후 M&A 절차 등의 내용을 포함한 자체 회생 계획안을 오는 29일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협의회에는 대표 채권자인 메리츠증권, 매각 주관사 삼일회계법인, 홈플러스 노동조합,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참석했다.

홈플러스는 지난 3월 기업 회생 절차 개시 이후 6월부터 법원의 허가를 받아 인가 전 인수·합병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지난달 26일 마감된 본입찰에서 인수 제안서를 낸 후보는 한 곳도 없었다. 앞서 예비 입찰에 이름을 올렸던 인공지능(AI) 업체 하렉스인포텍과 부동산 개발사 스노마드마저 발을 뺐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거론됐던 NH농협의 인수 가능성도 실현되지 않았다.

협의회에서 홈플러스가 부분 매각 대상으로 SSM 사업부를 지목한 것은 가장 매력도가 높은 자산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현재 홈플러스는 현금 유동성이 악화해 전기료 등 공과금을 체납하고 있고, 이달 들어선 직원 급여까지 분할 지급하는 등 경영 압박이 심화돼 현금이 절실한 상황이다.

올해 9월 기준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전국 297개의 오프라인 점포를 보유한 3위권 사업자다. 이 가운데 약 4분의 3인 222개 점포가 서울·경기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동종 업계 1위 사업자는 GS더프레시로 전국 매장 581개를 갖고 있다. 이 밖에도 롯데슈퍼(342개), 이마트에브리데이(243개) 등이 각각 2위, 4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들 사업자 입장에선 홈플러스익스프레스를 인수하면 점포 수와 상권 범위를 단숨에 넓힐 수 있다. 또 PB(자체 브랜드) 제품 확대, 근거리 배송과의 결합 등 시너지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 대부분의 SSM 업체들이 이미 수도권이나 주택 밀집 지역에 들어서 있어, 인수 이후 중복 상권 점포 정리가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입지가 겹치는 점포를 통폐합한다면 고용 문제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홈플러스의 기업형 슈퍼마켓(SSM) 체인 '홈플러스익스프레스' 매장 전경. /홈플러스 제공

홈플러스익스프레스의 분리 매각은 앞서 한 차례 좌절된 바 있다. MBK파트너스와 홈플러스는 지난해 6월 모건스탠리를 매각 주관사로 선정하고 홈플러스익스프레스 매각 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거론된 매각가는 8000억~1조원 수준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당시 유통업 전반이 구조조정 기조에 돌입하며 잠재 원매자로 거론된 기업들이 잇달아 인수설을 부인했고, 홈플러스 노조 측도 분리 매각에 강하게 반대하며 매각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다. 결국 3월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하면서 매각 작업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업계에서는 홈플러스 측이 매각 가격을 크게 낮추지 않는 이상 인수 매력이 낮다고 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오프라인 유통업계 전반적으로 대규모 신사업 투자보다는 기존 사업 경쟁력 강화에 힘쓰고 있는 분위기"라며 "과도한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인수하려는 업체가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홈플러스 전반의 위기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인가 전 M&A 승인 조건으로 직원 '고용 승계'를 내세워 온 홈플러스 노조 측도 최근 구조조정을 수용할 용의가 있다며 한발 물러섰다. 노조는 최근 성명서를 통해 "M&A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을 알고 있다. 구조조정 등 매우 아픈 과정도 밟게 될 것임을 인정한다. 원만한 협의를 통해 합리적인 방안을 함께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