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계 온라인 여행사(OTA) 트립닷컴이 국내 금융당국에 선불업 등록을 하지 않은 채 한국 소비자에게 기프트카드를 판매해 온 데 이어, 판매 중단 과정에서 사용 제한 관련 내용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아 소비자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트립닷컴은 그동안 금융위원회에 '선불전자지급수단 발행 및 관리업(선불업)' 등록을 하지 않은 상태로 국내 소비자들에게 기프트카드를 판매해 왔다. 현행법상 기프트카드는 선불 충전금과 동일한 결제·환불 수단으로 간주돼 사업자가 반드시 금융위에 등록해야 한다.
그러나 트립닷컴은 국가 및 언어 설정을 특정 지역으로 변경하면 구매와 결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우회 방식을 이용 안내에 명시하며 규제를 피해 왔다. 이에 금융당국은 이달 초 트립닷컴의 국내 기프트카드 판매를 즉시 중단하도록 조치했다.
문제는 판매 중단 후 트립닷컴의 대응이다. 트립닷컴은 사전 고지 없이 플랫폼에서 기프트카드 메뉴를 삭제했다. 그동안 국가·언어 설정을 한국어로 하면 잔액 조회를 할 수 있었는데 해당 기능을 없애버린 것이다. 트립닷컴은 기프트카드를 구입하면 이메일로 잔액 확인 링크를 보냈는데, 이를 클릭해도 접속이 불가능해졌다. 이에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선 "기존에 적립된 충전금을 말도 없이 날려버린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왔다.
다만 국가와 언어 설정을 타 지역으로 변경하면 여전히 잔액 조회와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트립닷컴이 한국어 환경에서만 메뉴를 없애버린 것이다. 판매 중단이나 사용 제한 등 이용자에게 불리한 변경 사항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접근 경로만 차단하면서 소비자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현행 전자금융거래법은 선불전자지급수단의 이용 조건이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변경될 경우, 이를 사전에 반드시 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용 조건 축소 사전 고지 ▲잔액 전액 환급 ▲선불충전금 별도 관리 ▲변경 최소 7일 전 고지 및 30일 이상 게시 의무 등이다. 이에 따르면 트립닷컴도 기프트카드 판매 중단 고지, 한국어 환경에서의 사용 제한 안내, 환불·대응 절차 제공 등 기본적인 이용자 보호 조치를 해야 하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업계 일각에서는 트립닷컴이 국내법을 무시하고 '깜깜이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사업자라면 엄격히 준수해야 할 법적 의무를 해외 플랫폼이라는 이유로 비껴가는 것은 명백한 역차별"이라며 "한국어 환경에서 접근이 어렵게 된 만큼, 즉각적인 사용 중단과 함께 잔액 환불 조치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