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부터 편의점까지 업종을 불문하고 유통사들의 내년도 사업 계획의 화두 중 하나는 외국인이다. 소비 양극화가 이어지고 내수가 부진한 상황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사업 성장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24일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올해 들어 11월 말까지 백화점 매출 중 외국인 고객 비중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신세계백화점의 주요 3대 점포인 본점과 강남점, 센텀시티점의 매출 중 외국인 비중은 13.5%를 기록했다. 현대백화점의 주요 점포인 더현대서울과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의 매출 중 외국인 비중은 20% 수준으로 전해졌다.
외국인 매출 증가율도 높다. 롯데백화점은 전년 대비 올해 외국인 매출 증가율이 35%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현대백화점의 외국인 매출 증가율은 30% 수준이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올해는 코로나19 전후를 통틀어 전체 매출 중 외국인 매출이 가장 높은 해"라고 했다.
편의점의 상황도 비슷하다. 편의점 GS25는 올해 외국인 관광객 매출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올해 들어 11월 말까지 알리페이·위챗페이·유니온페이 등 외국인 결제 수단을 통해 집계된 매출은 전년 대비 74.7%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편의점 CU의 외국인 관광객 매출은 107.5% 증가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 유통가는 내년 성장 전략 중 하나로 외국인 소비자 확보를 택했다. 케이(K)팝 등 한류 영향에 따라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한국관광공사는 올해 방한 외국인 관광객 수가 역대 최대 규모인 20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10월 말까지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약 1582만명으로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유통사들은 방한한 외국인의 소비 길목을 지키고 서 있는 것이 내년 사업 성장을 도모하는 방법이라고 보고 있다. 가계부채가 많은 상황에서 고물가 기조가 이어지면서 국내 소비자들의 소비 여력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식품 등 제조사처럼 해외 시장 진출을 쉽사리 넘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유통은 국경을 넘을 수 없다'는 얘기가 있는 것처럼 국내에서 완전히 자리 잡은 유통사라도 그 간판을 달고 해외 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 탓이다.
이 때문에 유통가에서는 외국인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편리한 쇼핑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 통번역 서비스부터 강화했다. 롯데백화점 잠실점은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인공지능(AI) 통역 서비스를 선보였다. 현대백화점은 영어·중국어·일본어 등 10여 개국 언어로 지원되는 AI 쇼핑 어시스턴트 '헤이디(HEYDI)'도 선보였다. 편의점 CU는 지난 4월부터 AI 통역 서비스를 일부 점포에 도입했다.
멤버십도 강화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외국인 전용 통합 멤버십 'H포인트 글로벌'을 선보였다. 편의점 CU는 일본 대표 멤버십 '폰타 포인트'와 제휴 서비스를 선보였다. 폰타 포인트는 로손(Lawson) 등 30만여 매장에서 사용 가능한 멤버십으로 전 세계 1억2000만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가이드북을 배포하는 마케팅도 진행하고 있다. 편의점 GS25는 글로벌 한글 게임 플레이북 '야호'와 손잡고 'K편의점 가이드북'을 제작했다. 이 가이드북은 인천공항, 명동, 성수, 제주 등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의 GS25 20여 곳에서 무료로 배포됐다. GS리테일 관계자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서울 여행 코스를 비롯해 편의점 활용법, 인기 상품 랭킹, 아티스트의 최애 간식 등 다양한 정보를 담은 가이드북을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롯데백화점은 할인 행사에 집중하고 있다. 알리페이, 위챗페이, 유니온페이, 라인페이 등 글로벌 주요 결제지불사와 협업해서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콘텐츠에 집중하고 있다. 지식재산권(IP) 협업 콘텐츠와 체험형 팝업스토어(임시 매장)가 방한 외국인을 불러오기에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해서다. 지난 11월엔 글로벌 대표 케이팝 시상식인 '2025 MAMA 어워즈' 단독 팝업스토어를 선보였다. '오징어게임 시즌3' 단독 팝업과 아이돌 그룹 세븐틴 팝업 등도 유치했다.
김난도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해외 시장 진출보다 방한 외국인의 소비 길목을 지키고 있는 편이 성공 확률은 높고 실패 확률은 낮다"며 "유통업계가 CJ올리브영처럼 한국을 방문해서 꼭 들러야 하는 점포로 입소문이 나도록 다양한 마케팅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