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송년회에서 술을 고르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식당에서 자연스럽게 술을 주문하던 분위기에서 벗어나 '어디서 사 어디로 갈까'를 먼저 고민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서울·수도권 일부 식당에서는 소주 한 병 가격이 7000원까지 오르면서 외식 술값 부담이 커진 탓입니다. 편의점·대형마트에서 저가·미니 와인이나 소용량 위스키를 고르는 등 홈파티·콜키지용 주류를 준비하는 흐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홈파티·콜키지 프리(손님이 식당에 술을 가져왔을 때 별도 비용을 받지 않는 것)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엔 홈파티 게시물만 200만건을 넘어섰고, 콜키지 프리 해시태그가 달린 식당 홍보 게시글도 15만건에 달했습니다.
직장인 남수빈(32)씨는 "친한 지인들과의 송년회를 위해 예약한 식당 메뉴판에 '소주 7000원'이라고 적힌 걸 보고 다들 놀랐다"며 "이후로는 와인이나 위스키를 사서 가져갈 수 있는 콜키지 프리 식당을 예약하거나 집에서 간단히 요리해 홈파티를 준비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치솟는 외식 물가 부담에 저가 와인·미니 위스키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자, 편의점·대형마트의 소용량 주류 매출도 증가하는 분위기입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올해 연말(11월 1일부터 12월 10일) 기준 미니 와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5%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미니 양주(위스키 포함) 매출도 지난해보다 10% 증가했습니다.
이랜드리테일이 운영하는 킴스클럽에서는 직수입 가성비 와인 매출이 전년 대비 20% 늘었습니다. 롯데마트는 3만원 미만 저가 와인 매출이 전년 대비 20% 증가했습니다. 이마트 역시 3만~5만원대 중저가 와인이 전년 대비 32.5% 더 많이 팔렸습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가격 부담은 적고 연말 분위기는 낼 수 있는 가격대에 소비자가 반응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통업계는 이 같은 흐름에 맞춰 저가·소용량·입문용 와인이나 위스키 제품군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킴스클럽은 최근 700㎖ 스카치 위스키 '라이트 하우스 언피티드(Lighthouse Unpeated)'를 9990원 상시 가격으로 선보였습니다. 킴스클럽 강남점은 준비한 물량의 80%가 빠르게 소진됐습니다. 롯데마트는 칠레산 와인 '테이스티 심플' 2종을 4900원대로 판매하는 등 초 가성비 와인 판매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편의점들은 미니 주류 진열을 늘리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고물가 시대에 연말 주류 시장의 중심축이 '비싸더라도 식당에서 시키는 술'에서 '합리적인 가격대에 내가 골라서 즐기는 술'로 이동하고 있다고 봅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요즘 소비자는 술을 지출이 아니라 경험의 대상으로 여긴다"며 "가격 부담은 줄이면서 취향은 포기하지 않으려는 소비 심리가 홈파티·콜키지 문화를 대세로 이끈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본래 고가의 이미지가 강했던 와인·위스키의 소용량·저가 제품군이 소비자의 심리적 방어 장벽을 허물었다"며 "소용량 또는 저가로 경제적 부담을 낮춰 소비 접근성을 높인 결과"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