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계속되고 있다. 모회사인 미국 본사(쿠팡 Inc)가 전면에 나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쿠팡 안팎은 여전히 뒤숭숭한 분위기다. 내부에서도 김범석 의장 책임론이나 보상안 관련 여론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쿠팡은 정보 유출 사태가 발생하고 전사적으로 비상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주요 경영진은 연일 긴급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실무 부서에서는 불필요한 외부 접촉은 자제하고, 연말에 예정된 회식, 모임도 줄줄이 취소했다.
전날 쿠팡 한국 사업을 총괄하는 박대준 대표가 물러나고, 모회사인 쿠팡Inc의 해롤드 로저스 최고관리책임자(CAO) 겸 법무총괄이 임시 대표로 선임됐다. 로저스 대표는 곧 한국에 입국해 이달 17일 국회 청문회 출석 요구 등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하버드 로스쿨 출신 변호사인 로저스 대표는 김범석 의장의 최측근이다. 모회사와 김 의장 측근이 적극적으로 사태 수습에 나서겠다는 의지로 읽히는 한편, 쿠팡 안팎에선 김 의장의 역할과 대응 방식에 대한 비판도 계속되고 있다.
김 의장의 행방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게 쿠팡의 공식 입장이지만, 실제로 김 의장은 사태 초기부터 관련 내용을 보고받고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장이나 본사와 직접 소통하는 인원이 제한적인 만큼, 실무진들 사이에서도 답답함을 호소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정서상 박대준 대표가 사임하는 것보다 김 의장이 나와서 진정성 있는 사과 한마디 하는 것이 사태 진화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며 "전형적인 외국계 사고방식으로, 일반적인 국내 기업이 사태를 수습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국내에선 기업 위기 발생 시 사측이 책임을 인정하고, 실질적인 오너가 공개 해명이나 사과하는 것이 기본적인 매뉴얼로 여겨진다. 이후 절차가 사태 수습 방안과 재발 방지책을 발표하고, 피해자에게 합리적인 배상 약속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법률통으로 통하는 로저스 대표를 선임한 만큼, 향후 과징금 부과 등 법적 대응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소비자나 시민단체에서 요구하는 피해 보상안이나 재발 방지책의 경우 단기간에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다.
익명을 요구한 기업 위기관리 전문가는 "미국, 유럽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체계가 확실하기 때문에 한국서도 법리적으로 우선 접근을 해보려는 것"이라며 "국민 정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결정인데, 내부에서도 의견이 맞지 않아 혼란스러운 상황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상안도 구체적인 조사 결과가 나오고, 법률적으로 배상 결론이 나면 마련될 가능성이 있다"며 "어떤 방식이 옳다고 하긴 어렵지만 국내 기업이라면 도의적인 차원에서 조사나 수사 결과와 별개로 보상안이나 개선책을 논의하겠다는 식으로 대응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