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유통 침체와 사모펀드식 경영의 한계가 겹치며 홈플러스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다. 인수 후보 부재와 경영 악화 속 점포·협력사·노동자들의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정치권과 이해관계자들은 책임을 미루고 있다. 홈플러스가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해결을 가로막는 구조적 문제는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선택이 필요한지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9월부터 홈플러스 사태 해결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있다. TF는 출범 당시 "이번 사태로 협력 업체와 직원 등 30만명에 달하는 피해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되는 만큼, 정책적으로 어떤 대응이 가능한지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TF는 이달 5일 기자회견에선 "정부와 공적 구조조정 기관이 개입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홈플러스가 회생 절차를 미루고 추진하는 인가 전 인수합병(M&A)을 위해서는 구조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제대로 된 인수 후보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강도 높은 슬림화(자산 축소)를 통해 보다 현실적인 매각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26일 조선비즈와 인터뷰에서 현 상태로는 홈플러스 매각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말 인수 의향서(LOI)를 접수한 두 업체의 인수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 매각 시도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 "몸값 더 낮춰야 매각 가능"… 강도 높은 슬림화 요구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격과 내부 상황을 정리해 다시 매수자를 찾아야 한다"며 "아직 해결 못 한 재무 관계부터 근로자 고용 승계 문제까지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 부담을 떠안을 인수자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보다 몸값을 더 낮춰서 인수돼야 홈플러스 직원도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며 "일부 손해를 보더라도 점포 수를 60~70개 수준으로 과감하게 줄여야 한다"고 했다. 그는 "경쟁력이 떨어진 점포들을 일부 정리했지만, 여전히 수십 곳의 적자 점포가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종사자 피해가 커지는 건 불가피할 것으로 봤다. 지역이나 점포별로 쪼개거나 아예 사업부 단위를 분리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점포별로 나눠지면 수익성이 낮은 지점을 중심으로 인력 감축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지난해 홈플러스의 기업형 슈퍼마켓(SSM) 부문인 홈플러스익스프레스를 분리 매각하는 방안이 거론됐지만, 노동조합(노조) 반대 등에 부딪혀 결국 무산됐다. 대형마트에 비해서 매출이 많고 수익성이 높다는 이유로 시장에서 관심받았지만, 고용 보장이나 채권 변제 문제, 까다로운 절차 등에 발목을 잡혔다.
권남훈 산업연구원장은 "유통업은 규모가 중요한 산업이다. 홈플러스 통매각이 이상적이지만, 최근 업황 흐름 속 홈플러스의 낮아진 생존력을 고려하면 부분 매각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 상황이 흘러가든지 무조건적인 고용 보장은 있을 수 없다"며 "충격을 완화하고 없애도록 노력해야겠지만, 고용 문제는 전체적인 산업 변화나 발전 방향을 함께 제시하며 더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 "알짜 자산 이미 소진… 청산도 현실적 선택지"
전문가들은 '알짜' 자산은 이미 대부분 정리됐고, 오프라인 마트의 안 좋은 업황을 고려할 때 청산 절차를 밟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고도 했다. 진정성 있는 인수자가 나오지 않는다면, 정리되는 것이 오히려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 개입이나 공적자금 투입에 대해서는 반대 기류가 많았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홈플러스 안팎의 상황을 고려하면 새 인수자가 나오더라도 재정 부담 때문에 다시 부실화하면서 수명만 연장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고 했다. 양석준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도 "이번 사태는 오프라인 유통업의 몰락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며 "홈플러스 자체가 생존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는 것이 전체 산업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서 교수는 "정부는 청산 과정에서 종사자, 협력사 등의 산업 생태계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도움을 줘야 한다"고 했다. 이종우 교수도 "고용 안정 차원에서 정책적 혜택 정도는 고려할 수 있지만, 정부 주도로 사기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했다.
◇ "정치적으로 해결할 문제 아냐... 충격 덜어주는 게 정부의 최선"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 경제 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사태는 정치권에서 정치적인 논리로 접근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실업급여, 고용보험, 직업 교육 등 기존 정책을 활용해 예상되는 충격을 덜어주는 것이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했다.
유통업을 잘 아는 기업이 인수자로 나서야 한다는 얘기도 있지만, 업계에선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관측이 대세다. 수익성이 될 만한 점포와 부지는 모두 팔렸고, 남은 건 홈플러스라는 '브랜드'뿐이라는 시각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 3사'라는 인식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껍데기뿐인 회사를 누가 인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고정 비용 관리가 핵심인 유통업의 특성을 잘 아는 기업일수록 인수를 꺼릴 것"이라고 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홈플러스 대주주 MBK파트너스가 경영 실패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면서도, 이것만으로는 상황을 해결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한상린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모펀드의 특성, 시장 상황, 구조적 문제와 맞물린 결과다. MBK에 모든 책임을 묻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양 교수는 "경영주로서 구성원을 어려움에 처하게 했으니 도의적 책임은 져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