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유통 침체와 사모펀드식 경영의 한계가 겹치며 홈플러스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다. 인수 후보 부재와 경영 악화 속 점포·협력사·노동자들의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정치권과 이해관계자들은 책임을 미루고 있다. 홈플러스가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해결을 가로막는 구조적 문제는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선택이 필요한지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지난달 31일 서울 시내 한 홈플러스 매장 모습. /뉴스1

토요일인 지난 22일 오후 2시 서울 홈플러스 가양점은 한산했다. 이따금 마트 직원만 오갈 뿐이었다. 매대는 듬성듬성 비어 있었다. 가양점 관계자는 "주말이면 가족 단위 소비자들이 찾아와야 하는 데 폐점될 것으로 생각해서인지 발길이 뜸하다"고 했다.

지난 3월 4일 홈플러스가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고 8개월가량이 흘렀지만 이렇다 할 해결책 없이 홈플러스의 경영 실적은 악화하고 있다. 법원이 지난 6월 인가 전 인수합병(M&A) 추진을 허가하고 다섯 번이나 회생계획안 제출 시한을 연장해 줬지만, 마땅한 원매자가 없는 상황이다. 지난달 31일 홈플러스 매각 주관사인 삼일회계법인에 인수 의향서를 제출한 하렉스인포텍(AI 업체)과 스노마드(부동산 개발사)는 본입찰에 참여하기 어려울 것이란 시선이 많다. 유통 경험이 전무한 적자기업이고 자금 조달력이 부족한 탓이다.

자본시장 업계에서는 본입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큰 만큼 다른 방식의 해결책이 논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가 전 인수합병을 이유로 또다시 회생계획안 제출 시한을 연장해 주는 건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그래픽=손민균

◇ 홈플러스, 영업할수록 기업가치 하락

2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기업가치는 연일 하락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자금난을 이유로 종합부동산세 등 약 700억원 규모의 세금을 미납했다. 지난 8~9월 전기요금 체납분까지 더하면 미납액은 920억원대로 불어난다. 세금도 문제지만 전기요금 체납이 지속되면 전기 공급이 어려워져 신선식품 판매가 불가능해진다. 마트로서 경쟁력도 떨어진다.

회계적으로도 그렇다. 홈플러스 매각 주관사 삼일회계법인에 따르면 홈플러스의 계속기업가치는 약 2조5000억원 수준이다. 여기엔 홈플러스가 폐점으로 고정 지출을 줄이려던 계획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정치권과 논의 끝에 폐점도 유예가 된 상황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폐점 유예만 됐고 유통 점포로서 기능은 떨어져 손실만 커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삼일회계법인은 당초 홈플러스의 계획대로 폐점과 재입점이 됐다면 상각전영업이익(EBITDA·핵심 사업을 통해 실제로 벌어들인 현금 능력) 기준으로 연간 1882억원을 절감할 것으로 계산했다.

홈플러스는 수년간 실적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2021년 회계연도(매년 3월~다음 해 2월 기준) 이후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작년 매출은 전년 대비 0.9% 증가한 6조9919억원, 영업손실은 57.5% 증가한 3141억원으로 집계됐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영업장 문을 여는 만큼 손실이 커진다면 진작 문을 닫는 결정이 합리적인데 홈플러스는 관(官)만 쳐다보고 있고, 관에서는 답 없는 농협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10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농업협동조합중앙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뉴스1

◇ 실업은 문제지만 이대로는 해결 불가능

홈플러스 내부적으로도 이대로 홈플러스를 살 곳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홈플러스 매각 상황을 잘 아는 내부 관계자는 "이대로 홈플러스를 살 곳이 어디 있겠나. 좀 더 규모를 줄이고 가격도 낮춰야 한다. 폐점 보류 점포는 빨리 문을 닫아야 하고, 몇 개 지점을 더 정리해야 한다"라면서도 "농협이 그 전에 홈플러스를 사주는 게 좋다"고 했다.

홈플러스를 살 곳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유통 산업의 중심축이 오프라인에서 이커머스(온라인 전자상거래)로 넘어가서다. 경쟁사인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자체 오프라인 점포를 효율화하거나 줄이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오프라인 점포망을 가진 홈플러스를 인수할 이유는 적다. 두 번째 이유는 홈플러스 대주주인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투자금 회수와 부채 상환을 위해 핵심 점포들을 매각 후 재임대하는 '세일앤리스백' 방식을 반복해 매력적인 자산(소유 점포)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탓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국내 인수 주체가 마땅치 않아 알리익스프레스 등 중국 유통사와 중국계 사모펀드에도 의향을 물었는데 부정적인 반응만 돌아왔다"며 "살 사람이 없다면 쪼개 팔던가 가격을 더 낮추든가 다음 논의로 넘어가야 한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홈플러스를 청산하면 직접 고용 인원만 약 2만명, 협력업체 근로자를 포함하면 약 10만명의 일자리가 달려있어서 논의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 농협만 바라보는 홈플러스

홈플러스와 MBK파트너스가 가장 바라는 그림은 농협중앙회가 인수하는 것이다. 회생 전 인수합병 방식을 추진하면서부터 홈플러스는 줄곧 농협중앙회와 만들 수 있는 시너지에 대해 홍보해 왔다. 농협이 홈플러스를 인수하면 농민들의 직거래 유통망인 '하나로마트'를 전국 단위로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가 대표적이다. 앞으로 채무가 조정되고 국책 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이 매각 지원이나 인수 금융 지원에 나서준다면 훨씬 더 일이 수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홈플러스 매각 상황을 잘 아는 내부 관계자는 "지난 국정감사에서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홈플러스 인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계속 소통에 나서고 있다"면서 "국무총리실이나 대통령실에서 움직여줄 때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홈플러스의 어려움도 잘 알고 있지만 농협 유통 부문도 매년 400억~600억원 적자를 내며 버거운 상황"이라며 "지금 우리가 감당하기도 벅찬 짐을 지고 가는 상황에서 남의 짐을 떠안을 수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홈플러스 측은 강호동 농협중앙회장과 현장의 목소리가 다르다고 판단하고 있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경기 화성시갑)이 농협중앙회를 통해 지역 농축협 전문경영인(상무·전무)들을 상대로 9월 24일부터 10월 17일까지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지역 농·축협 166곳 중 33%가 농업경제지주의 홈플러스 인수와 같은 대도시 대형마트 사업 확대 진출에 "매우 긍정적"이라고 답하고 35%는 "긍정적"이라고 답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홈플러스 내부에서 시간이 지나면 농협이 결국 홈플러스를 인수하게 될 것이라고 보는 이유기도 하다. 내부 설득을 거쳐 결국 강호동 농협중앙회장도 홈플러스 인수로 방향을 틀 것이란 기대다.

◇ "농협 인수 득보다 실... 시장논리로 해결해야"

하지만 이 같은 기대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나온다. 홈플러스는 HMM 같은 국가기간산업이 아닌데 국책 금융기관이 인수 금융 지원에 나서고 매각 지원에 나서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농협이 홈플러스를 인수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도 득보다 실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자기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조직(농협)이 인수하게 되면 결국 다시 부실화되거나 수명만 연장시키는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본시장 업계 관계자는 "홈플러스가 없어져도 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현재로선 자본의 비효율적 배치를 효율적으로 재배치하는 것이 최선이며 결국 시장논리로 해결해야 한다"면서 "10만 실업자 문제는 새로운 기술을 가르치고 직업 훈련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