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서울 광진구 비스타 워커힐호텔 한식당 명월관 야외 정원에는 김장 준비가 한창이었다. 하얀 조리복에 앞치마를 두른 수십 명의 사람들이 김장 재료가 준비된 조리대 앞을 분주히 오갔다. 노년층 부부, 젊은 모녀부터 혼자 온 청년들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워커힐호텔앤리조트는 이날부터 이틀간 VIP 고객을 비롯한 180여 참가자를 대상으로 '김장 담그는 날' 행사를 진행했다. 호텔에서 파는 '수펙스 김치'를 조리장과 함께 직접 만들어 보는 행사다. 김장 문화가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을 기념해 2014년 처음 시작됐고, 올해 9회째를 맞았다.
김재학 워커힐 호텔 김치 조리장은 "올해 행사에는 미국 등 수출을 위해 변경된 레시피를 처음 적용한다"며 "지난해까지는 양지 육수를 사용했지만, 육류 수출 규정, 채식 수요를 고려해 올해부터는 3가지 버섯으로 우려낸 비법 채수(菜水)를 넣는다"고 말했다.
김 조리장은 김치에 들어갈 재료를 소개하고, 레시피 설명과 함께 김장 과정을 시연했다. 조리장과 참가자들 조리대 위에는 절인 배추부터, 무채, 파우더형 고춧가루, 설탕을 대체하는 그린스위트, 간수를 뺀 신안 천일염, 민물 흑새우, 최상급 새우젓(육젓), 채수 등이 준비돼 있었다.
워커힐은 1997년 5성급 호텔 최초로 자체 김치 브랜드 수펙스 김치를 선보인 데 이어 올해 10월에는 업계에서 가장 먼저 미국 수출을 시작했다. 이번에 수출된 김치는 수펙스 김치의 세컨드 브랜드인 '워커힐호텔 김치'로, 내년 초에는 수펙스 김치도 수출할 계획이다.
수펙스 김치는 일반 시중에서 판매되는 김치에 비해 자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해외 수요 공략에도 적합하다는 게 워커힐호텔 측 설명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부친인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은 처음 호텔에서 김치를 만들 때, 누구나 언제든 즐길 수 있는 김치를 만들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조리장은 "과도하게 짜거나 맵지 않은 김치를 만드는 핵심 중 하나인 파우더 형태의 고춧가루도 최 선대회장 조언의 결과"라며 "일반 김치에 쓰이는 입자가 큰 고춧가루는 자칫 이빨에 끼거나 이물감이 남을 수 있어 국제 행사, 비즈니스 미팅 등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워커힐을 비롯한 호텔업계 김치 경쟁은 치열해지는 추세다. 고물가와 노동 부담으로 김장을 포기하는 이른바 '김포족'이 늘어나고, 국내뿐 아니라 해외서도 포장김치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서다. 호텔 입장에선 객실 판매 중심의 수익을 다각화하고, 자사 멤버십 신규 고객 유입을 유도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호텔김치의 시초는 워커힐이지만, 외형(매출 규모)은 2004년 시장에 진출한 조선호텔앤리조트가 가장 크다는 평가다. 2023년부터는 후발주자인 롯데호텔앤리조트가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고, 지난해와 올해는 파라다이스호텔, 서울드래곤시티 등도 자체 김치 상품을 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