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업이 굿즈를 팔 줄이야."
지난 14일 서울 성수동에 문을 연 미국 인공지능(AI) 기업 팔란티어의 팝업스토어(임시 매장) 앞에 100m가 넘는 줄이 늘어섰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까지 고객으로 둔 B2B(기업 간 거래) AI 기업이 서울에서 세계 최초로 소비자 대상 팝업을 열며 화제를 모았다. 앨릭스 카프 팔란티어 최고경영자(CEO)가 현장에 등장하자 '서학개미' 투자자들이 열광하기도 했다.
팝업스토어 시장이 산업의 경계를 허문 '이색 팝업' 전성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과거 패션·뷰티 중심이던 팝업이 이제는 테크, 식품, 라이프스타일은 물론 의약품이나 가상자산까지 전방위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17일 팝업스토어 분석 기업 스위트스팟의 '2025년 상반기 팝업스토어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팝업 운영 건수는 1488개로 전년(680개)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스위트스팟은 "의약품과 가상자산거래소 등 비전통 업종의 참여가 급증하면서 팝업 생태계 외연이 확장됐다"며 "소비재 중심 시장이 전 산업군으로 확산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실제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지난 6월 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 '업비트 팝업스토어'를 열어 가상자산 생태계를 소개했다. 오프라인 공간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고 투자 접근성을 높이려는 시도였다.
식품업계 역시 팝업스토어를 새로운 체험 채널로 활용하고 있다. 한돈자조금은 지난 11일 서울 성수동 XYZ Seoul에서 '슈퍼 한돈 페스타'를 열어 단백질 측정 등 참여형 콘텐츠를 운영했다. 전 일정 사전 예약이 조기 매진될 만큼 관심이 높았으며, 축산 기관도 팝업스토어를 통해 MZ세대(1980~2000년대생)와 교감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유통 채널 중에선 HDC아이파크몰이 이색 팝업스토어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서울 용산 '도파민 스테이션'을 중심으로 축구·키보드·곤충 등 취향 기반 팝업을 연이어 선보이며 '팝업 전문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유튜버 '정브르'와 협업한 '생물 팝업스토어'에서는 곤충과 파충류를 전시·분양했고, '도각도각 키보드 빌리지'에서는 참가자가 키보드를 타건하며 키감을 비교할 수 있는 체험 공간을 마련했다.
현대백화점은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현대아울렛 동대문점에서 '더현대 프레젠트' 팝업을 열었다. 케이(K)굿즈 300여 종을 큐레이션 해 한국 디자인과 감성을 알리고, 관광객 소비를 유도했다.
이랜드리테일은 NC강서점에서 '반려식물 분양소' 팝업을 운영하며 400여 종의 식물 전시와 테라리움·플라워볼 제작 등 체험형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한국필립모리스는 지난 3월 여의도 IFC몰에서 궐련형 전자담배인 '아이코스 팝업'을 운영하기도 했다.
스위트스팟은 리포트에서 "과거 한정된 업종에서만 주로 활용되던 팝업스토어가 이제는 특정 소비층을 겨냥한 특화 제품군에서도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제 팝업은 단기 판매나 홍보가 아닌 브랜드 실험의 플랫폼으로 기능한다"며 "소비자 반응을 직접 관찰하고, 한정된 기간 안에 새로운 상품과 메시지를 검증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