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의 김밥, 구미의 라면, 고창의 수박과 복분자까지. 특산물과 생활 음식을 앞세운 이색 축제가 내륙 지자체 관광의 새 카드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급증한 지역 축제 수에 비해 내실은 부족하고, 바가지요금 논란까지 겹치며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 '김밥천국'서 아이디어 낸 김천 김밥축제
8일 지자체 등에 따르면 경북 김천시는 지난해 처음 '김밥축제'를 열었다. 도시 이름 '김천'과 분식 브랜드 '김밥천국'을 연결한 이색 발상에서 출발한 이 축제에는 첫날에만 10만명이 몰리며 예상을 뛰어넘는 흥행을 기록했다. 인구 13만 명 소도시 김천시는 단숨에 전국적 주목을 받았다. 이달 25~26일 열리는 제2회 김밥축제는 넷플릿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김밥 챌린지' 열풍과 맞물려 외국인 관광객까지 대거 찾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이웃 도시 구미도 '라면'을 꺼내 들었다. 구미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농심 라면 공장이 있다. 2022년 농심과 손잡고 시작한 '라면축제'는 매년 규모를 키우며 지난해 17만명을 끌어모았다. 갓 튀긴 라면을 맛보는 체험과 다양한 레시피가 인기를 끌며 외국인 방문객의 발길도 늘었다. 전북 고창의 수박·복분자 축제, 강원 인제의 황태축제 역시 지역 특산물과 계절성을 내세워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이 같은 축제는 지역 경제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김천시에 따르면 김밥축제 이후 직지사 일대 주말 평균 관광객 수가 평소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고, 음식·숙박업 등 지역 상권도 활기를 되찾았다. 축제는 단기적으로 관광객 유입과 매출 증대를 이끌고, 장기적으로 지역 브랜드 가치와 관광 인프라 개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다.
◇ 부실한 준비에 지역 주민조차 외면하는 축제도
모든 지역 축제가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5월 2일 부산 기장군에서 열린 '2025 세계 라면 축제'가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준비 부족과 부실한 운영으로 행사 기간조차 채우지 못하고 조기 종료됐다. '세계 15개국 2200여 종의 라면을 맛볼 수 있다'는 홍보와는 달리, 현장에는 국내 제품과 동남아 라면 등 불과 7종만 전시됐다. 심지어 뜨거운 물도 제대로 제공되지 않았다.
이 밖에도 여러 지역 축제에서 교통·주차 혼잡 등 인프라 한계에 더해 숙박·음식 가격 급등 등 바가지요금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울릉도·부산·제주 등 주요 관광지와 축제 현장에서 숙박료·음식값·교통비 폭등 사례가 잇따랐고, 국내 여행 불만 요인 1위로 '높은 관광지 물가(45.1%)'가 꼽혔다.
축제의 양적 팽창이 내실을 약화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전북 지역의 축제는 2019년 50건에서 지난해 87건으로 74% 늘었지만, 같은 기간 주민 참가율은 61.3%에서 33.8%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외부 방문객 비중도 2019년 56.6%에서 2023년 50.7%로 감소했고, 관광객 1인당 소비액 역시 12.1% 줄었다. 지역민조차 외면하는 행사가 늘면서 소위 '좀비 축제' 우려까지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단기 수익에 집착한 가격 책정과 내실 없는 축제 운영이 지역 이미지와 관광 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김민철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 원장은 "바가지요금은 특정 업소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전체의 신뢰와 경쟁력을 좌우하는 구조적 문제"라며 "성실하게 영업하는 소상공인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제도 개선과 현장 대응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