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이 서울 강남점 등 점포 리뉴얼(재단장)을 위해 영입했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CD)들이 모두 퇴사한 것으로 2일 확인됐다. 지난 2022년 신세계 출신 정준호 대표 취임 직후 권경호 CD 등을 영입하며 '강남 1등 백화점'을 내걸었던 구상이 3년 만에 무산되는 분위기다.

롯데백화점 서울 강남점 전경. /롯데쇼핑 제공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백화점은 최근 강남점 MD테스크포스(TF)를 자문하던 권경호 CD와의 계약을 종료했다. 홍콩 '조이스부티크' 대표이사와 신세계인터내셔날 수입 편집숍 '분더샵' 출범을 총괄한 권 CD는 정 대표가 '강남 1등' 전략을 위해 직접 영입한 인사였다. 점포 단위 리뉴얼을 위한 CD 영입은 백화점 업계 사상 처음이었다.

2023년 정 대표가 데려온 다른 CD도 권 CD와 함께 계약이 끝났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백화점이 강남점 리뉴얼을 위한 외부 인재 영입 실험을 접은 것"이라고 했다. 롯데백화점 측은 "이들은 회사와 용역 계약을 체결했었다. 최근 개인적인 사유로 계약 종료를 택했다"고 했다.

당초 롯데는 강남점을 일본 도쿄의 '긴자식스'나 중국 베이징의 'SKP-S'처럼 젊은 감각과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뉴 럭셔리 백화점'으로 변모시키려 했다. 이를 위해 2년간 1조4000억원 이상을 투입하겠다고 밝히고, 신세계·루이비통·발렌시아가·지방시 출신 임원 7명을 임명했다.

그러나 2024년 신세계 출신 안성호 상무보가 퇴진하고, 지방시코리아 지사장 출신으로 영입했던 이효완 MD1본부장도 중도 퇴진했다. CD 등 외부 영입 인사들이 잇달아 회사를 나간 것이다.

롯데백화점 강남점의 매출은 2450억원 수준으로, 같은 상권 내 경쟁사와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 매출 2조원을 훌쩍 넘기고,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도 1조원대를 기록하는 가운데 롯데 강남점은 지방 거점 점포인 전주점(매출 약 2700억원), 창원점(약 2600억원)에도 뒤처졌다.

롯데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강남 1번지 백화점'을 노렸지만, 신세계·현대가 차례로 초대형 점포를 내면서 입지가 흔들렸다. 명품 브랜드 유치에도 번번이 실패하며, 현재 입점 브랜드는 오메가·막스마라·토리버치 등 '매스티지(대중과 명품의 합성어)'급 위주다.

롯데백화점은 강남점 리뉴얼을 통해 체질을 바꾸겠다고 밝혔지만, 투자 일정이 미뤄지거나 좌초되면서 여전히 실적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본래 2024년 착공을 목표로 했지만 그룹 유동성 악화와 명품 브랜드 유치 난항 등으로 계획이 미뤄졌다.

강남점 리뉴얼 연기에 이어 1000억원 이상을 투입한 수원 타임빌라스가 신세계 스타필드 수원 등 경쟁 채널과 비교해 점포 트래픽과 고객 체류 시간이 적은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표는 1987년 신세계에서 출발해 신세계인터내셔날 해외패션본부장, 조선호텔 면세사업부장을 거쳐 2019년 롯데지에프알(GFR) 대표로 합류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정 대표가 영입한 인사들이 줄줄이 퇴사하면서 롯데가 다시 전통적인 '순혈주의' 기조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며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