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온라인 플랫폼 알리익스프레스와 트립닷컴이 사실상 전자금융거래법상 지급수단에 해당하는 '코인'을 발행하면서도 금융당국에 선불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두 회사는 법상 면제 요건을 충족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이를 직접 확인할 수 없는 구조라는 점에서 제도적 허점이 지적된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알리익스프레스는 쇼핑 활동이나 게임 참여를 통해 코인을 지급하고, 트립닷컴은 항공권·숙박 예약, 리뷰 작성, 프로모션 참여 등에 따라 트립코인을 제공한다. 이용자는 이를 결제 시 결제액을 차감할 때 쓴다. 사실상 현금처럼 반복 사용할 수 있다. 특정 행위 보상으로 지급되고 실제 사용되는 구조는 현행법상 지급수단 범주에 해당할 수 있다.
전자금융거래법은 선불전자지급수단을 발행·운영하는 사업자의 금융위원회 등록을 의무화하고 있다. 등록 시 자금 보호 조치, 상환보증보험 가입, 발행 실적 보고 등 규제가 뒤따른다. 원칙적으로 등록하지 않은 발행은 위법이다. 다만 ▲사용처가 하나의 가맹점으로 한정될 경우 ▲연간 발행액이 500억원 미만이고 분기 말 잔액이 30억원 미만일 경우 등 일부 조건에서는 등록 의무가 면제된다.
트립닷컴 측은 "트립코인은 충전식이 아닌 보상·적립형 포인트로 등록 의무 대상이 아니며, 사용처도 트립닷컴 플랫폼에 한정돼 법상 면제 요건을 충족한다"고 밝혔다. 이어 "선불 충전금이 없어 지급보증보험 관리 의무 대상이 아니며, 트립코인 내역과 만료일은 '마이(My)계정'을 통해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며 "국내 업무와 관련해 여행보증업 보험에 가입해 매년 갱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알리익스프레스 측은 "전자금융거래법상 별도의 등록 없이 코인 발행 및 관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요건 중 하나를 충족했다. 관련 법률과 규정을 철저히 준수하기 위해 코인 발행 및 관리 전 과정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투명하고 책임 있는 운영을 위해 내부 통제 절차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으며 소비자의 권익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업계와 전문가들은 이를 자의적인 해석으로 본다. 법은 충전 여부가 아니라 소비자가 반복 사용할 수 있는 지급수단인지 여부를 기준으로 한다. 이에 따라 보상성·적립형 포인트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선불전자지급수단에 해당한다. 단순히 '충전식이 아니다'라는 이유만으로 면제를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알리익스프레스와 트립닷컴이 지급하는 코인은 무상 지급 포인트와 달리 실제 거래·소비 활동과 연동된 리워드라는 점에서 단순 이벤트성 적립금과 성격이 다르다. 이용자가 결제·예약을 거듭할수록 누적되고 반복 사용되는 구조인 만큼, 사실상 선불전자지급수단으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또 트립닷컴이 강조한 '플랫폼 한정 사용' 역시 전 세계 수천 개의 호텔·항공사·현지 업체와 연결돼 있어 사실상 다수의 가맹점에서 결제가 이뤄진다. 알리익스프레스 역시 수많은 입점업체와 제휴처에서 코인을 사용할 수 있어 '단일 가맹점' 요건에 부합하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여행보증보험은 여행상품 취소나 도산 환불 보장에 국한될 뿐, 트립코인 환급 불능 위험을 보장하는 장치는 아니다"라며 "법이 요구하는 상환보증보험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고 했다.
발행액·잔액 규모 등 핵심 지표도 해외 본사 차원에서 관리돼 금융감독원이 실태를 직접 들여다보기 어렵다. 트립닷컴코리아와 알리바바코리아가 외부감사 대상 법인으로 일부 회계정보를 공시하지만, 이는 국내 마케팅·운영에 국한돼 코인 발행 규모, 잔액, 보증 여부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알리바바코리아와 트립닷컴코리아가 전자금융업법상 선불업자 등록 면제 대상인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코인의 발행액과 잔액 등을 파악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소비자 보호 장치도 불완전하다. 알리익스프레스는 채무지급보증계약을 맺었다고 하지만 신용카드 거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트립닷컴은 국가·언어 설정 변경을 통해 기프트카드 구매를 허용해 지급수단 기능을 우회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내 OTA(온라인 여행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외국계 플랫폼이 면제 기준을 자의적으로 해석해도 금융당국이 확인할 수 없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며 "국내 기업에는 책임을 강제하면서 외국계는 사실상 제도 밖에서 동일 기능을 운영하는 규제 역차별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아이티학과 특임교수는 "금융당국이 면제 요건 충족 여부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현행 구조는 소비자 보호와 공정경쟁 질서를 위협한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코인을 사용한 소비자가 피해를 보더라도 환급이나 보상 기준이 불명확해 보호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현행 제도는 해외 플랫폼이 스스로 '면제 요건을 충족한다'고 주장하면, 금융당국이 이를 직접 확인할 방법조차 없는 구조다. 사실상 자율 신고제에 가까운 허점"이라며 "실제 사용 행태를 기준으로 등록·감독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국회에서 제도를 정비하겠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