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회생법원이 구영배 큐텐그룹 회장과 류광진 전 티몬 대표에 대해 476억원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확정한 것으로 25일 확인됐다. 구 회장과 류 전 대표는 1조8000억원대 티메프(티몬·위메프) 미정산·미환불 사태 핵심 책임자다. 전·현직 경영진의 형사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법원이 손해배상 청구권을 확정한 것이다.

그래픽=정서희

조선비즈가 입수한 서울회생법원의 손해배상 청구권 조사 확정 판결문에 따르면, 조인철 티몬 법정관리인이 구 회장과 류 전 대표를 상대로 신청한 손해배상 청구권 476억원이 확정됐다. 당초 조 관리인이 청구한 손해배상 청구권 금액은 1133억2683만259원이었지만 이 중 일부만 인정된 것이다.

손해배상 청구권 476억원은 계열사 간 시너지 극대화를 이유로 티몬이 큐텐그룹에 송금한 금액이다. 항목별로 보면 ▲선급금 110억원 ▲대여금 166억원 ▲상품권 등 판매 대금 200억원 등이다. 티몬은 큐텐그룹 산하 계열사다.

이 과정에서 법원은 류 전 대표가 2022년 10월 티몬 사내·대표이사로 취임해 2024년 9월 회생절차 개시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회사를 총괄하고, 구 회장은 큐텐그룹 계열 지분 구조를 통해 티몬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업무 집행을 지시한 사실을 인정했다. 회생법원은 "류광진은 티몬의 대표이사로서, 구영배는 업무집행 지시자로서, 그 임무를 게을리해 티몬에 손해를 입혔다고 할 수 있다"며 "두 사람이 연대해 회생채무자에게 476억원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다만 큐익스프레스 관련 비용을 티몬에 부담한 행위로 인한 손해액 약 605억원과 경영컨설팅 허위 수수료 약 51억원 등 일부 비용은 입증 자료 부족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조 관리인은 조선비즈와 통화에서 "원칙적으로는 형사 재판에서 범죄 사실이 확정된 이후 해당 판결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이례적"이라며 "구 회장과 류 전 대표 측에서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손해배상 청구권 476억원은 확정된다. (이번에 인정되지 않은) 나머지 금액은 형사 소송 결론이 나면 추가로 요구할 계획"이라고 했다.

서울 강남구 티몬 사옥의 모습. /연합뉴스

업계에서는 이번 손해배상 청구권 확정 결과가 티메프 경영진의 형사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구 회장 등 경영진 10명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사기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다. 또 임직원의 임금·퇴직금 약 260억원을 체불한 혐의로 구 회장과 류 전 대표, 류화현 위메프 대표, 김효종 큐텐테크놀로지 대표 등은 불구속기소 됐다.

박시형 법무법인 선경 대표 변호사는 "손해배상 청구권 조사 확정판결은 일종의 민사 소송이다. 민사에서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했다면 형사 재판에선 아예 따지지도 않았을 사안이지만, 지금은 반대의 상황"이라며 "민사에서 경영진의 책임이 일부 인정됐기 때문에 책임 소재에 더 엄격한 형사 재판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티메프 사태 피해 판매업체 대표 A씨는 "회생법원에서도 경영진의 횡령·책임을 인정한 결과"라며 "현재 진행 중인 형사 재판을 판결하는 사법부도 해당 판결 내용을 무시하진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구 회장과 류 전 대표 등 일부 경영진은 임금 체불 사건과 관련해 사건 병합심리를 신청한 상태다. 병합심리는 동일 피고인에게 여러 사건이 별도로 기소된 경우, 법원이 효율성과 공정성을 위해 사건을 합쳐 심리·재판하는 절차다. 피고인 입장에서는 하나의 판결에서 전체 양형을 정리하므로 감경 요인이 적용돼 형량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이에 대해 티메프 사태 피해자 모임인 '검은우산비상대책위원회'의 신정권 위원장은 "두 재판에 적용하는 논리가 전혀 다른 상황에서 경영진들이 형량을 낮추고자 병합심리를 신청한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며 "법원에 병합심리를 신청한 것에 대한 반대 의견서를 제출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