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SPA(생산·유통·판매 일원화 브랜드) 패션 브랜드 H&M은 지난달 국내 매장에서 판매한 상품의 교환·반품 기간을 기존 30일에서 15일로 줄였다. 그간 유니클로, 자라, H&M 등 글로벌 SPA 브랜드는 한 달 이내 교환·반품을 받아주는 정책을 시행해 왔다. 유행하는 옷을 빠르게 만들어 신상품을 자주 선보이고, 매장에서 자유롭게 옷을 입어보고, 교환·반품도 쉬운 SPA 브랜드의 이 '관대한' 소비자 정책은 관련 기업의 성장을 지탱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최근 온라인 쇼핑의 부상과 함께 반품률이 높아지고, 재고 및 폐기 부담이 커지자 반품 정책을 강화하는 추세다. H&M은 올해 2월 영국 온라인 고객을 대상으로 반품 수수료를 기존 비회원에만 1.99파운드(약 3759원)를 청구하던 것에서 전 구매 고객에게 2.95파운드(약 5572원)를 받는 것으로 정책을 바꿨다. 단, 매장에서 직접 반품할 땐 무료다. 사측은 "반품을 최대한 낮추기 위한 노력"이라고 밝혔다. 스페인 SPA 브랜드 자라도 2022년부터 온라인 무료 반품을 철회하고, 건당 3000원씩 소비자가 부담하게 하고 있다.

'택배 쉬는 날' 마지막 날인 지난 17일 서울 한 물류센터에 배송될 택배 물품이 쌓여 있다. /연합뉴스

◇ 반품 견제 나선 글로벌 유통업계... 美선 연간 1244조원 어치 상품 반품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온라인 쇼핑 시 다양한 크기와 색상의 동일 상품을 주문해 받아보고, 안 쓰는 상품은 반품하는 '브라케팅(Bracketing·묶어서 쇼핑하기)'은 이제 흔한 쇼핑 행태가 됐다. 2022년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의 63%가 브라케팅을 한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반품률도 증가하는 추세다. 전미소매협회(NRF)는 지난해 미국 소매시장에서 17%의 상품이 반품된 것으로 추산했다. 금액으로 치면 약 8900억달러(약 1244조원)다.

시장조사 업체 이마케터에 따르면 미국 전자상거래(이커머스)에서 발생하는 반품률은 약 20%로 오프라인 매장에서 발생하는 반품률(8~10%)보다 2배 이상 높았다. 특히 구매 과정에서 색상이나 사이즈 등을 확인하기 어려운 의류의 경우 40% 이상의 반품률을 기록했다. 국내 패션 이커머스 역시 평균 반품률이 30% 수준으로 알려졌다.

일부 소비자들의 '워드로빙(wardrobing)' 쇼핑도 반품률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는 분석이다. 워드로빙이란 마치 옷장에서 옷을 꺼내 입듯, 구매한 제품을 한두 번 사용하고 반품하는 쇼핑 행태를 의미한다. 유통업체의 관대한 반품 정책을 악용하는 이들로, 소셜미디어(SNS) 등이 이들을 부추긴다는 분석이 나온다.

쿠팡이 지난 2022년 유료(와우) 멤버십 회원에게 조건 없이 제공하던 '묻지마 반품' 정책을 중단한 이유도 일부 워드로빙 족을 근절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완전히 잘라내진 못한 모양새다. 지난 3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한 대학생이 "하루에서 일주일 쓰고 반품했다"라며 쿠팡에서 반품한 상품들을 자랑하는 글을 올려 비난받았다.

지난 3월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쿠팡 묻지마 반품 내역'. 이 학생은 10만원대 운동화와 110만원대 휴대폰 등을 쿠팡에서 구매해 사용한 후 반품했다고 밝혔다.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 아마존·와비파커, 반품 처리 부담에 시착 서비스 종료

이커머스 업체의 반품 처리(역물류) 비용은 상품 원가의 20~60%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히 물건만 회수하는 게 아니라, 반품된 상품의 손상 여부를 확인하고, 다시 포장해 재판매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이는 수익성이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손실로 이어진다. 아마존과 월마트가 '반품 없는 환불 서비스'를 시행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자,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운영하는 시착 서비스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아마존은 2017년부터 아마존 프라임 회원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던 '구매 전 체험(Try Before You Buy, 이하 TBYB)' 서비스를 올해 1월 종료했다.

온라인 안경 판매 업체 와비파커(Warby Parker)도 시착 프로그램을 올해 연말까지 종료하기로 했다. 2010년 출범한 와비파커는 고객이 집에서 5일간 안경 5개를 착용해 보고 구매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무료로 진행해 성장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오프라인 매장 및 디지털 가상 체험을 통해 고객의 쇼핑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매장 운영 전문 AAG컨설팅은 와비파커가 해당 서비스를 중단할 경우 연간 약 1억달러(약 1299억원)를 절감할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 안경 업체 와비파커는 시착 프로그램인 '홈 트라이 온(Home Try-On)을 연내 종료한다고 밝혔다. 해당 프로그램은 고객이 무료로 집에서 5일간 안경 5개를 착용해 보고 구매하게 하는 서비스다. /와비파커 제공

◇ '고객이 왕' 한국 유통업계는 아직

반품 문제는 국내 유통업계에도 고민거리다. 홈쇼핑의 평균 반품률은 10%대다. 이커머스의 경우 전체 주문량의 20~30%가 반품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국내 택배 물량이 51억5785만개였으니, 보수적으로 잡아도 연간 5억 건 이상이 반품되는 셈이다.

그러나 국내 유통사들은 반품을 제한하는 데 소극적이다. 무료 반품 서비스가 고객을 유인하는 주요 전략인 데다, 아직 국내에선 '고객이 왕'이라는 인식이 뚜렷해서다. 쿠팡과 함께 이커머스 강자로 부상한 네이버의 경우 올해 3월 '네이버 도착 보장'을 '네이버배송(N 배송)'으로 리브랜딩하면서 무료 반품·교환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사측은 해당 제도 시행 후 네이버쇼핑 거래액이 20%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입어보고 사는' 구매 방식이 정착된 홈쇼핑 업계도 반품 제한에 엄두를 못 내고 있다. 홈쇼핑 업계 관계자는 "안 그래도 홈쇼핑 이용객이 줄어드는 추세인데, 수십 년간 제공하던 무료 반품·교환 정책을 폐지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라며 "반품 등으로 발생하는 재고는 온라인 몰에서 판매해 소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