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업계와 뷰티 업계의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고 있다. 영국 향수 브랜드 '조 말론 런던' 창업자인 조 말론은 이달 초 보드카 브랜드 '조 보드카(Jo Vodka)'를 출시했다. 주류와 뷰티 산업은 향, 맛, 촉각 등 감각이 본질인 산업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최근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브랜드가 전하는 경험과 철학을 중시하는 트렌드가 커지고 있는데, 브랜드 경험을 확장해 더 다양한 고객층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다.

조 말론이 이달 초 출시한 '조 보드카'. /조 보드카 제공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조 말론은 영국 증류주 기업 퀸터센셜 브랜즈의 마스터 디스틸러 조앤 무어와 손잡고 보드카 브랜드 '조 보드카'를 지난 1일 선보였다. 1년간 개발한 끝에 출시한 제품으로 101 '더 퓨어리스트', 102 '더 보헤미안', 103 '더 아티스트' 등 3종이다. 조 보드가 3종은 전 세계 100여 개의 면세점과 조 보드카 웹사이트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

일본 야마구치현의 고급 사케 브랜드 '닷사이(獺祭)'는 2020년 스킨케어 브랜드 '닷사이 뷰티'를 론칭했다. 사케 양조 과정에서 생성되는 '사케 리'라는 성분을 활용한 제품이다. 론칭 당시 마스크팩을 선보였고, 작년에는 모이스처라이징 로션을 출시하는 등 라인업을 차근차근 확장하고 있다. 닷사이는 극도로 정제된 쌀을 사용하는 '준마이 다이긴조' 사케로 유명한 만큼, 뷰티 제품에서도 순수함과 정교함을 강조하고 있다.

조 보드카와 닷사이 뷰티는 비교적 신생 브랜드다. 주류 회사가 출시한 향수 브랜드가 20년 가까이 인기를 구가하며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린 경우도 있다. 바로 '킬리안 파리'다. 킬리안 파리는 프리미엄 코냑으로 유명한 헤네시(Hennessy) 가문의 킬리안 헤네시가 2007년 출범한 럭셔리 향수 브랜드다. 킬리안 파리는 2018년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한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서울 신라호텔에 매장을 냈는데, 코로나19 팬데믹 때 폐점했다. 그러다가 작년 12월 한남동에 플래그십 매장을 새로 열었다.

일본 프리미엄 사케 닷사이와 닷사이 뷰티의 마스크팩. /닷사이 뷰티 제공

업계 관계자는 "주류와 뷰티 산업은 감각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라며 "후각과 미각, 촉각을 자극하는 두 세계가 점점 더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조 말론은 조 보드카를 출시하면서 "내가 가진 후각적 감성이 미각의 영역으로도 확장될 수 있을지 오랫동안 궁금했다. 조 보드카는 그 가능성을 실현한 브랜드"라며 "각 보드카는 특정한 감정에 기반해 만들어졌으며, 마시는 이의 순간과 기분을 새로운 공간으로 이끌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업계에선 각 업체가 브랜드 스토리를 확장해 더 다양한 고객층을 확보하기 위해 이런 전략을 취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동일한 정체성(아이덴티티)을 토대로 브랜드를 확장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조 보드카는 조 말론의 대표 향수병과 흡사한 디자인을 채택했다. 킬리안 파리의 대표 제품인 '엔젤스 쉐어'의 경우 오크통에서 오래 숙성된 코냑을 떠올리며 만든 향이다. 제품 이름 자체가 술을 오크통에서 숙성할 때 알코올이 증발하는 현상을 일컫는 용어다.

닷사이 뷰티 역시 본업인 사케 양조의 연장선상에 있다. 닷사이 뷰티는 "사케의 뛰어난 맛을 만들기 위해 타협하지 않는 정신에서 탄생했다"라며 "사케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술 찌꺼기에서 추출한 엑기스에 주목했다"라고 밝혔다.

킬리안 파리의 대표 향수 앤젤스 쉐어. /킬리안 파리 제공

이처럼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되 브랜드의 영역을 확장하면 기업 입장에선 고객층을 다변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고급 주류는 여성 고객 접근이 쉽지 않고, 고급 뷰티 제품은 남성 고객 접근이 쉽지 않다. 하지만 주류 브랜드가 뷰티 브랜드를 출시하면 여성 고객층과의 접점이 강화되고, 뷰티 브랜드가 주류 브랜드를 출시하면 남성층·미식가들을 공략하는 게 가능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소비자들은 기능보다 브랜드가 전달하는 감각, 이야기, 라이프스타일에 주목한다. 브랜드가 단순히 제품이 아니라 경험과 철학을 파는 시대가 됐다"라며 "앞으로 브랜드의 이종 산업 간 확장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