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따라 글로벌 명품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명품 시장은 이미 경기 침체, 소비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연합(EU)산 제품에 20%, 스위스산 제품에 31%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추가적인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루이비통 매장. /AP 연합뉴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전 세계 명품 시장의 약 25~30%를 차지하는 핵심 소비 시장 중 하나다. 루이비통, 구찌, 샤넬 등 주요 브랜드의 제품 대부분은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생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 관세 부과 방안을 발표한 이후 명품 업체들의 주가는 폭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발표 일주일만인 지난 9일에는 상호 관세를 90일 유예한다고 선언했지만, 명품 업체들의 주가는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다.

프랑스 주식 시장에서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주가는 지난 2일 575.2유로에서 전날 530.1유로로 7.8% 하락했다. LVMH는 루이비통·디올·셀린느 등 주요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그룹이다. 스위스 주식 시장에 상장돼 있는 리치몬트 그룹 주가는 지난 2일 154.3스위스프랑(CHF)에서 전날 137스위스프랑으로 11.2% 하락했다. 리치몬트 그룹은 까르띠에, 반클리프 아펠, IWC 등 최상위 보석, 시계 브랜드를 산하에 두고 있다.

브루노 파블로프스키 샤넬 패션 담당 사장은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주식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켜보면 우리 매장들의 사업 수준을 예측할 수 있다"고 했다. 주가가 하락하면 판매 실적도 좋지 않다는 의미다.

투자은행(IB) 번스타인은 올해 명품 업계 매출이 5% 성장할 것이라는 기존 전망을 2% 감소할 것으로 수정했다. 특히 구찌를 보유한 케링 그룹의 1분기 매출은 25%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LVMH의 경우 그룹 매출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핵심 사업인 패션·가죽 부문 매출이 지난 1분기 1%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는데, 전날 LVMH 실적 발표에서 패션·가죽 부문 매출은 금융권 전망치를 밑돌았다. 1분기 패션·가죽 부문 매출은 101억800만유로(약 16조30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5% 감소했다. 시계·주얼리, 향수·화장품, 주류 등을 포함한 그룹 총매출은 203억1100만유로(약 33조원)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 감소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명품 업체들이 관세 부담을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전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명품 시장 침체와 소비 위축 속에서도 견조한 실적을 유지해 온 브랜드들은 관세에 따른 가격 상승 요인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다"며 "강력한 브랜드를 가진 만큼 가격 인상을 통해 관세 영향을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씨티그룹은 지난 3일 보고서를 통해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가 관세 충격을 일부 완화하기 위해 앞으로 몇 주 안에 미국에서 한 자릿수의 가격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케링 그룹의 프랑수아 앙리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구찌·발렌시아가·생로랑 등 자사 브랜드에 관세가 부과될 경우 가격 책정 전략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상 본사가 가격을 올리면 전 세계에서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한국 시장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명품 브랜드들은 1년에 1~2차례 이상 가격을 올리면서도 가격 '인상'이 아닌 '조정'이라는 표현을 쓴다"라며 "본사가 가격을 인상하면 한국에서도 가격을 이에 맞출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관세 탓에 본사의 가격 인상 폭이 커지면 그 영향은 국내 소비자들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명품 시장 수요 회복이 당초 예상보다 늦어져 2026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명품 업체들이 당분간 어려운 시기를 보낼 것으로 예상되는 탓이다. 실제로 지난 10일 프라다가 베르사체를 12억5000만유로(약 2조320억원)에 인수한 것과 관련, 상호 관세에 따른 시장 혼란에 따라 막판에 가격이 낮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16억달러(약 2조2900억원) 규모에 매각될 예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LVMH는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미국 현지 생산을 확대하면서 관세 타격을 상당 부분 피한 바 있다. 이번에도 미국 생산 늘리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가격 인상을 통해 대응할 가능성이 크지만, 장기적으로는 생산 기지 다변화 같은 구조적인 변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