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백화점이 최근 회현동 본점의 명칭을 영어로 변경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본관은 '더 리저브(The Reserve)', 신관은 '더 에스테이트(The Estate)'로 명명했습니다. 아울러 명품관인 '더 헤리티지(The Heritage)'도 문을 열 예정입니다.
이런 명칭 변경은 본점의 단지화(타운화) 작업과 함께 진행된 것입니다. 오는 3월 옛 제일은행 본점을 재단장함과 동시에 현재 본관·신관으로 운영하던 것을 3개 관으로 확장하고 명칭까지 바꿔 운영한다는 계획입니다.
특히 '더 헤리티지'는 초고가 명품 브랜드 매장 위주로 운영되고, 구매 실적 최상위 고객 전용 '트리니티 라운지'도 이곳에 들어설 예정입니다. '더 리저브' '더 에스테이트'도 상품구성(MD)을 개편하고, 각 관에는 등급에 따른 중요고객(VIP)라운지가 입점할 전망입니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는 정유경 (주)신세계 회장의 '2030년 매출 10조 프로젝트'의 일환입니다. 백화점 면적을 늘리고, 명품을 강화해 VIP(우수고객)의 집객력을 높여 매출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입니다. 또 신세계백화점은 이번 명칭 변경을 통해 글로벌 고급 이미지를 강조하겠다는 의도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선 "헷갈린다", "오히려 촌스럽다" 등의 비판론도 나오고 있습니다. 직관적인 이해가 가지 않는 영어 명칭은 의미도 불분명하고, 본관이나 신관과 비교해 실제 입에 붙지도 않는다는 반응입니다.
기존의 한국어 명칭이 가지는 정체성과 접근성이 사라졌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신세계 본관'이라는 이름 그 자체가 갖는 상징성이 희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세계 본관은 1930년 일본 미쓰코시(三越) 백화점 경성지점으로 개장한 한국 최초의 백화점입니다.
1963년 신세계로 재탄생한 이후, 한국 유통산업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습니다. 근대 건축 양식과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명동의 랜드마크이자, 백화점 건물 자체가 서울시 지정 문화재이기도 합니다. 굳이 영어 리브랜딩으로 이런 전통적 색채를 옅게 만드는 것이 신세계의 오판(誤判)이라는 것이죠.
이 같은 영어 남용은 신세계뿐 아니라 유통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힙니다. 여의도 더현대 서울의 층별 명칭 및 안내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명칭을 모두 영어로 사용해 직관적인 이해가 어렵습니다. 일례로 지하 2층은 크리에이티브 그라운드(Creative Ground)로 불리는데 패션 및 라이프스타일 매장과 F&B 매장이 입점된 식입니다. 한화갤러리아도 식품관 명칭을 고메이(Gourmet)494로 부릅니다.
일각에선 기업의 영어 남용이 여러 문제를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합니다. 특히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정보 전달이 어렵거나 혼란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고령층이나 특정 계층의 소비자들은 영어 명칭을 이해하기 어려워 서비스 이용이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유통업계 내부에서도 과한 영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아파트 이름처럼 그저 좋아 보이는 영어 단어를 가져다 붙인다고 저절로 품격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며 "오히려 조롱의 대상만 될 뿐인데, 소비자들보다 의사 결정자들의 생각 변화가 더 늦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