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12.3 비상계엄 사태 후 얼어붙었던 유통업계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유통업계는 남은 보름간의 연말 특수를 위해 미뤄뒀던 판촉 마케팅에 돌입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침체한 내수 침체가 단기간 살아나긴 어려울 거란 분석이 나온다.

◇다시 연말 특수 공략 나선 유통가

17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4일 국회 본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유통업계는 다시 연말 특수 공략에 나섰다. 유통업계에서 12월은 한 해 매출을 결정하는 특수다. 올 한 해 고환율과 소비침체, 이상기온 등으로 실적이 부진했던 유통업체들은 11월부터 점포를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연출하고 대대적인 할인 행사를 진행해 매출을 끌어올리려던 계획이었다.

신세게백화점 본점이 11월 1일 공개한 초대형 미디어 파사드 '신세계스퀘어'에서 나오는 크리스마스 영상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 /신세계백화점 제공

그러나 지난 3일 비상계엄 사태로 쇼핑객이 줄면서 계획했던 마케팅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었다. 여기에 환율이 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여행·면세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티맵과 메리츠증권이 집계한 주요 백화점 점포별 이동 차량 추이에 따르면 비상계엄 전 일요일인 11월24일과 12월1일 백화점 3사(신세계·롯데·현대)의 전년 대비 트래픽 성장률은 각각 마이너스(-)10%, -11%였다. 그러나 비상계엄 후인 8일과 15일 트래픽 성장률은 -26%, -18%로 쪼그라들었다. 가뜩이나 작년보다 쇼핑객이 줄어든 상황에서 계엄 사태가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불러온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때도 백화점은 일시적인 소비 위축 현상을 맞닥뜨린 바 있다. 국회 탄핵안 표결(12월 9일) 전인 11월17일부터 12월4일까지 진행한 정기세일 기간 백화점 업계는 6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구체적으로 롯데백화점은 전년 대비 0.7%, 현대백화점은 1.2% 각각 감소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예년보다 따뜻한 겨울로 외투 판매가 부진해 11월까지 매출이 안 나왔는데, 12월 들어 날씨가 추워지면서 패션 부문 매출이 10~20% 성장했다”면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으니, 연말 소비 분위기가 더 살아나길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매출이 오르려면 충동구매가 일어나야 하는데, 현재로선 필수 소비재 중심으로만 팔리는 상황”이라며 “떨어지지만 말자는 심정으로 (매출을) 방어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지난 15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설 선물세트가 진열되어 있다. /연합뉴스

◇2016년보다 어렵다... 코스트코 익산점 토지 계약도 연기

소비심리가 반등하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거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 당시 2016년 10월 102.7이던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94.3으로 떨어졌고, 이듬해 1월에는 93.3까지 내려갔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의 파면이 결정된 2017년 3월(97.0)에서야 반등 흐름을 보였고, 2017년 4월(101.8) 100을 넘어섰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소비자들의 경기 상황을 판단하는 지표로 지수가 100 이하로 내려가면 경제 전반에 대한 소비자 기대심리가 부정적이라는 의미다.

지난 11월 소비심리지수는 전월보다 1.0 포인트(p) 하락한 100.7이었다. 업계는 탄핵 정국 속 부정적인 소비심리가 최소 내년 1분기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문제는 과거 탄핵 정국 때보다 현 유통업계의 체력이 더 약하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국내 소매시장 성장률은 4.8%였으나, 올해는 1%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유통업계 양대 산맥인 롯데쇼핑(023530)신세계(004170)그룹도 실적 부진으로 비상 경영에 돌입했다. 롯데쇼핑 롯데온, 롯데면세점 등 적자 폭이 큰 쇼핑 계열사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고, 신세계그룹 역시 G마켓과 SSG닷컴, 신세계디에프의 감원을 단행했다.

투자 유치도 경색되는 양상이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는 이달 중 국내 20번째 매장인 익산점 개설을 위해 3만7000㎡ 규모의 토지 매매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었으나, 탄핵 정국 여파로 계약 일정을 다음 달로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일회계법인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팬데믹 이후 감소한 민간 소비가 과거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금리 인하와 수출 낙수효과로 내년 중 일부 내수 회복이 기대되지만, 회복 강도가 기대에 미달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내다봤다.

정연승 단국대 교수는 탄핵 심판 선고가 완료되는 내년 상반기까지 소비심리가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정 교수는 “과거 탄핵 정국과 같은 일정이라면 평시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겠지만, 현재로선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한 소비심리가 빠르게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