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국내 백화점 상권의 양극화가 심해지며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트럼프 2기’의 시작으로 대내외적 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데다 수도권과 지방 간 격차가 벌어지면서 주요 백화점들의 구조조정이 가속화될 거란 관측이다.

2일 대한상공회의소는 상의회관에서 ‘2025 유통산업 전망 세미나’를 열었다. 글로벌 시장 전망을 비롯해 백화점과 대형마트, 편의점, 온라인 등 소매시장 업태별로 내년에 나타날 변화와 판도를 짚었다.

백화점은 상권 간 양극화가 가속화될 거란 전망이 나왔다. 김인호 비즈니스인사이트 부회장은 “내년에는 ‘빅3(롯데·신세계·현대)’가 경쟁에서 뒤처진 상위 20위권 밖 점포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면서 2000년 초 1차에 이은 2차 구조재편의 원년이 될 것”이라며 “구조조정은 빅3를 포함해 전방위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난 6월 폐점한 롯데백화점 마산점

실제 올해 기준 연 매출 1조원 이상 점포는 전국 12개로, 이들 매출이 전체 백화점 매출의 절반이 넘는다. 또 연 매출 2000억원 이하 백화점 20곳의 총매출은 올해 매출 3조원을 돌파한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1곳의 매출에 못 미친다. 김 부회장은 “내년 백화점 전체 매출은 약 40조원으로 -1.7% 역신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대형마트 업계는 올해 -0.5% 역성장에서 내년 0.8%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할 거란 관측이 나왔다. 이경희 이마트 유통산업연구소장은 “고물가와 고금리 완화로 민간 소비 개선 흐름이 나타나겠지만 제한적일 것”이라며 “이상기후 현상 심화 및 인공지능(AI) 활용의 증가로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이 소장은 내년에는 대형마트 사업자들이 식품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21년 65.7%던 대형마트 식품 매출은 올해 9월 69.9%로 증가하는 추세다. 여기에 물가 및 금리 완화 추세, 일부 가전, 가구의 교체 주기 도래에 따라 비식품부분의 실적 개선이 예상되는 것도 실적 상승에 요인이 될 거란 관측이다.

근거리 유통채널인 SSM(기업형 슈퍼마켓)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성장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김종욱 에이지데이터 대표는 “내년에도 식비 부담에 따른 내식 수요와 절약 소비 트렌드가 계속됨에 따라 근거리 유통채널인 SSM은 성장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며 “편의점은 포화 상태지만 SSM은 롯데슈퍼, GS더프레시 등의 물리적 점포 팽창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다만, 그는 물리적 접근성이 유사한 개인슈퍼의 경우 소상공인 지원 정책에도 불구하고, 차별화 요인을 부각하지 못해 여전히 성장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했다.

편의점은 점포 간 경쟁이 심화하면서 최저임금 인상이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기 상황이 부정적일수록 근거리에서 필요에 따른 소량 구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기에 경기에 많은 영향을 받는 타 전문 소매업의 매출을 편의점이 흡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부정적 요인을 상쇄할 거란 분석이다.

신종하 BGF리테일 실장은 “(내년엔) 라면, 패션, 뷰티 특화 등 새로운 포맷의 편의점들이 신규 점포로 나오게 될 것”이라며 “트렌드뿐만 아니라 기술, 상생과의 협업, 사회적 가치 등 모든 면의 경쟁력을 가진 편의점 브랜드가 생존할 것”이라고 했다.

올해 회복세가 더뎠던 면세점 업계는 내년에도 어려운 상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10월 공항 출입객 수가 코로나19 전인 2019년 대비 95% 이상 회복했지만, 면세점 구매 인원과 매출액 회복률은 59%에 불과했다.

황선규 한국면세점협회 단장은 “면세점의 소비층이 소수의 대량구매자에서 개별 여행객으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면세점 쇼핑보다 식도락 관광, 유적지 방문 등과 같은 체험형 관광이 선호되는 경향을 보이고 외국관광객이 쇼핑장소로 면세점보다 로드숍을 찾고 있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황 단장은 “고환율로 동일 상품이 면세점보다 백화점에서 더 싸게 팔릴 정도”라며 “9~15% 구매전환율 상황 속 내년 여객수 연동 임대료 수준은 1조원 규모로 예상돼 업계 수익은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전문점업계에 대한 발표에 나선 유정현 대신증권 연구위원은 “외국인들의 쇼핑 장소가 시내 면세점에서 헬스앤뷰티(H&B) 전문점 즉, 올리브영으로 바뀌고 있다”라고 했다. 실제 면세점 업계가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반면, 올리브영의 올해 매출 성장률은 전년 대비 약 30%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온라인쇼핑업계 발표에 나선 이미아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박사는 “C(중국) 커머스의 한국 시장 공략과 더불어 내수시장의 한계로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다”며 “올 7월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한 쇼핑 도우미 루퍼스(Rufus)가 정식 출시되면서 AI 쇼핑 도우미 시대가 개막됐다”라고 했다. 그는 또 아마존과 알리바바가 양분하고 있는 글로벌 유통 시장에서 경쟁을 피하기 위해 특정 카테고리 중심의 전문 플랫폼(버티컬 플랫폼)도 주목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날 기조강연을 맡은 송지연 BCG 코리아 소비재 부문 파트너는 “자기 탈피를 해내는 진화를 못 하면 새로운 플레이어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주는 것이 유통업의 본질”이라며 “과거의 성공방정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파괴적 혁신을 단행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