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경기 침체로 부진한 실적을 낸 롯데쇼핑(023530)이 이번 정기 인사에서 임원 수를 줄여 조직 슬림화를 추진한다. 백화점은 부진 점포의 점장을 대거 내보내면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소비 침체가 지속되자 명품 강화를 위해 영입했던 외부 영입 인사도 과감히 방출했다. 마트·슈퍼 부문과 이커머스 사업부에선 핵심 사업부 인사를 방출하며 실적 부진에 대한 신상필벌을 보여줬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유동성 위기설에 시달린 롯데그룹은 전날 단행한 2025년 정기 임원 인사에서 임원 22%를 퇴임시켰다. 전체 임원 규모는 지난해 말 대비 13% 줄었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펜데믹 시기인 2021년 임원 인사보다 더 큰 폭이다.
롯데 유통업의 본체인 롯데쇼핑에선 총 16명(전무 1명, 상무 5명, 상무보 10명)이 퇴임했다. 승진한 임원은 총 11명이다. 기존 임원 수(84명)와 비교해 5명이 줄어든 것으로, 전체의 6%가량 줄었다. 이번 인사에서 임원 30%를 감축한 롯데케미칼(011170)과 비교하면 규모가 작다.
롯데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최고경영자(CEO)도 21명(36%)을 교체했다. 그러나 롯데쇼핑 수장 3명은 모두(김상현·정준호·강성현) 유임시켰다. 현재 유통군이 추진하는 사업 전략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사업 실행력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백화점 조직개편 예고… 점포 매각 등 구조조정 예상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부에서는 일부 지역 점포에서 상무급 점장들을 내보냈다. 구성회 백화점 부산본점장(상무), 이주영 백화점 평촌점장(상무보), 전일호 백화점 광주점장(상무보), 조용욱 백화점 대구점장(상무보) 등이 퇴임했고, 이 자리를 부장급에게 직무대행을 시켰다.
현재 롯데백화점은 부산 센텀시티점을 비롯해 실적이 부진한 점포 10여 곳을 두고 매각·폐점을 포함한 자산 효율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번 인사에서 지역 점포 점장이 대규모로 퇴진한 이유로 보인다. 롯데쇼핑 안팎에선 이번 인사 이후 저성과 점포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거란 관측이 나온다.
명품 라인업을 강화하기 위해 영입했던 지방시코리아 지사장 출신 이효완 백화점 상품기획(MD)본부장(전무)도 퇴임한다. 이는 경기 침체 장기화로 명품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데에 대한 조치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롯데백화점이 조직개편 과정에서 MD 조직 축소 등 슬림화 작업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 나온다. 앞서 현대백화점도 매출액 하위권에 있는 신촌·미아·천호점 등의 영업 관리 인력 30%가량을 본사로 재배치하고, MD 조직을 통합하는 등 인력 효율화 작업을 진행했다.
롯데백화점은 올 3분기 해외사업과 쇼핑몰, 아웃렛을 포함 매출이 전년 대비 0.8% 감소한 7553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707억원으로 8% 줄었다.
◇ 슈퍼·마트 통합 작업 마무리 수순… ‘신상필벌’ 인사
마트·슈퍼사업부에선 PMI(Post-Merger Integration·인수 후 통합) TF(태스크포스)를 이끌던 박우진 상무보가 퇴임했다. 박 상무보는 마트사업부와 슈퍼사업부의 통합 작업을 지휘해 왔다.
롯데슈퍼와 마트는 2022년부터 강성현 대표 일원화 체제 하에 상품 조달(소싱)과 물류, 온라인 등 전 부문을 통합했다. 내년까지 시스템을 일원화해 사업부 통합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박 상무보의 퇴임은 통합 작업이 마무리되는 수순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영업본부장을 맡았던 주대중 상무, 가공식품부문장을 맡았던 김태윤 상무보, 창고형 할인점 맥스(MAXX)부문장인 이준혁 상무보와 심명섭 상무(마트 DATA부문장)가 퇴임했다. 2022년 재단장(리뉴얼) 개장한 맥스는 지난해까지 20개 점포를 낸다는 계획이었으나, 현재 4개 점포만이 운영되고 있다.
롯데쇼핑 마트·슈퍼사업 부문은 올 3분기 매출이 1조9307억원, 영업이익은 574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견줘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4.39%, 11.69% 줄었다. 업계에선 사업부 통합을 통한 인력 구조조정과 비효율 점포 정리에도 실적이 부진하자, 신상필벌 인사가 단행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롯데온을 운영하는 이커머스사업부에서는 PD부문장인 이재훈 상무가 퇴임했고, 권오열 상무보(이커머스 마케팅부문장), 이원석 상무보(이커머스 재무관리부문장) 등 주요 보직 임원들이 물러났다.
롯데온은 지난 6월 사상 첫 희망퇴직을 단행한 데 이어 부문장 인사를 포함한 대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한 바 있다. 당시 마케팅 부문장이 보직 해임되고, 영업1부문 부문장과 제품혁신본부 사용자경험(UX)부문 부문장이 물러났다. 지난 7월에는 비용 절감을 위해 잠실 롯데월드몰에 있던 사옥을 이전했다.
롯데온의 올해 1~3분기 누적 적자는 615억원이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14조7452억원으로 전년 대비 3.8% 감소했다.
앞서 롯데쇼핑은 지난 10월 밸류업 공시에서 2030년까지 매출 20조원, 영업이익 1조원 이상 달성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백화점 주요 점포를 리뉴얼하고, 마트·슈퍼는 영국 오카도와 추진하는 이(e)그로서리 사업 통합을 통한 그로서리(식료품) 경쟁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또 이커머스는 패션, 뷰티, 아동, 명품 등 버티컬 전문몰로 입지를 구축한다. 이번 인사는 이런 전략을 고려한 인사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향후 조직개편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롯데쇼핑도 대대적인 조직 슬림화 작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면서 “롯데는 원래 유통기업 중 임원 승진에 후한 편이었는데, 위기 때 몸집을 줄이는 것은 일정 부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