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농이 타 흐릅니다/ 내 눈물이 흐릅니다/ 새하얀 모시 적삼/ 풀이 서고 싶었는데/ 아내란/ 참 고운 그 이름/ 아 허공의 메아리여” (‘아내’ 이일향)
시조시인이자 사조그룹·푸른그룹 명예회장인 이일향 여사가 발표한 이 시조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이일향 여사는 1979년 남편을 갑자기 여읜 후 상실감에 빠져 있다 부친 이설주 시인의 권유로 문학에 몰두하게 됐다.
한국 문단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사조산업의 경영에도 참여했던 이일향 여사가 2일 별세했다. 향년 94. 이일향 여사는 생전에 “인생 전반을 여자·아내·엄마로서만 살았다면, 인생 후반은 시인으로서 살고 있다”라며 “나에게 시란 나에 대한 구원이고 생명의 연장이다”라고 했다.
이일향 여사는 1930년 대구에서 태어나 1949년 사조산업 창업주인 주인용 선대 회장과 결혼으로 연을 맺었다.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다. 주인용 창업주 별세 후 장남인 주진우 회장이 경영을 이어받아 현재까지 사조그룹을 지휘하고 있다.
이일향 여사는 1983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하며 본격적으로 시조시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저서로는 ‘지환을 끼고’ 등을 비롯해 총 15권이 있으며 2016년에도 시조집 ‘노래는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다’를 출간하는 등 최근까지 왕성하게 활동을 이어갔다.
1989년 ‘중앙시조대상’ 신인상으로 첫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후 ‘윤동주문학상’ 우수상, 노산문학상, 정운 이영도문학상, 한국시조시인협회상, 이설주문학상, 한국카톨릭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한국 문학 발전에 많은 공을 세웠다.
1992년에는 ‘신사임당상’을, 가장 최근작 ‘노래는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다’는 2017년 제9회 구상문학상 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일향 여사의 작품은 삶에 대한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선과 사랑을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다. ‘시조문학계 큰 어른’으로서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고문,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 여성시조문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고인은 사조산업 이사, 명예회장에 오르는 등 시조 작품 활동 외에 사조산업 경영에도 참여했다. 특히 1983년, 남편 주인용 창업주의 뜻을 이어 남편의 아호를 딴 ‘취암장학재단’을 설립, 이사장을 맡아 인재양성과 교육발전에 헌신했다. 이후 대구가톨릭대학교에 매년 장학금 1억원을 전달하는 등 장학 사업에 크게 힘썼다.
유족으로는 장남 주진우 사조산업 회장과 둘째 주영주 전 이화여대 교수, 사위인 신현확 전 국무총리의 아들 신철식 우호문화재단 이사장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장례식장 5호실에 마련되었다. 발인은 5일 오전 5시 50분이며 장지는 경기도 용인시 천주교용인공원묘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