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부채액이 1조64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티메프(티몬·위메프) 사태는 국내 오픈마켓(온라인 장터)의 위기를 반영한다. 1996년 국내 이커머스(전자 상거래)의 시초인 인터파크와 G마켓을 필두로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호령했던 오픈마켓 업체들은 네이버의 등장으로 1차 위기에 빠진 이후 쿠팡과 컬리 등 직매입의 시대가 오면서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오픈마켓이 중개 거래 수수료를 수익으로 삼는다면, 직매입은 상품을 직접 매입해 배송하고 마진으로 돈을 버는 구조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직매입 업체들은 새벽 배송 등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며 인기를 끌었다.

구영배 큐텐 대표가 티메프를 헐값에 인수할 수 있었던 것도 이커머스 시장에서 오픈마켓 사업성이 떨어진 덕이다. 구 대표 인수에는 손실이 나더라도 몸집만 키운다면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이 과정에서 상장을 위한 무리한 인수와 출혈경쟁을 통한 거래액 부풀리기 등과 같은 만연한 업계 관행이 거듭되며 사태를 키웠다.

◇ 오픈마켓 선택한 티메프… 네이버 등장에 부진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이커머스의 시초는 1996년 설립된 인터파크다. 이후 2000년대 옥션, G마켓에 이어 11번가까지 판매자(셀러)들이 입점하는 플랫폼을 제공하고, 상품 판매를 중개하는 오픈마켓 형태가 주를 이뤘다. 1세대 이커머스다.

그래픽=손민균

티몬과 위메프는 2세대 소셜커머스다. 국내 최초 소셜커머스(소셜미디어를 활용하는 전자 상거래)인 ‘티켓몬스터’로 사업을 시작한 티몬은 지난 2010년 5월, 위메프는 같은 해 10월에 사업을 시작했다. 두 회사는 쿠팡과 함께 ‘국내 소셜커머스 3대장’으로 불리며 시장을 키웠다.

3세대 이커머스로 버티컬커머스(특정 업종에 집중된 전자 상거래)가 2010년대 중반을 거치며 우후죽순 등장했다. 식료품 판매 위주인 컬리, 옷을 파는 무신사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렇게 이커머스로 통칭되는 회사들은 실상 사업구조에 따라 수익 구조도 다르고 적용받는 규제도 다르다. 매입 형식에 따라 직매입, 상품 판매를 대행하는 위수탁 거래, 거래 연결만 진행하는 중개계약 등으로 나뉜다. 오픈마켓이 중개계약으로 수수료를 번다면 직매입 방식은 판매자로부터 상품을 직접 매입해 마진으로 수익을 낸다. 오프라인 마트와 비슷하다.

티몬과 위메프는 할인 쿠폰 등을 파는 소셜커머스에서 2017년부터 업태를 오픈마켓으로 바꿨다. 직매입을 하는 쿠팡과 결정적으로 다른 길을 가게 된 시점이다.

중개 거래를 주선해 수수료를 받는 플랫폼인 오픈마켓 사업의 구조상 매출보다 거래액이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주된 기준으로 작용한다. 앞서 G마켓이 미국 이베이에 1조6000억원에 인수될 때도 연 매출은 3000억원에 불과했지만, 10배에 달하는 거래액이 기준이 됐다. 신세계그룹이 이를 다시 인수할 때도 10조원의 거래액을 기준으로 3조40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투입했다.

하지만 국내 이커머스 업계에서 이미 오픈마켓 경쟁력은 약화한 상태였다. 네이버쇼핑이 2011년부터 이커머스를 개시하며 오픈마켓 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티몬과 위메프 역시 2010년대부터 자본 잠식에 시달리다 전성기와 비교하면 헐값에 큐텐에 2022년과 2023년 각각 인수됐다.

네이버쇼핑의 등장으로 소비자들은 더 이상 특정 쇼핑몰 홈페이지를 직접 찾아 들어가지 않아도 네이버 검색만을 통해 상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고객이 G마켓이나 옥션 등에서 상품을 최종 구입하더라도 네이버쇼핑에서 가격을 비교하고 원하는 상품을 찾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여기서 G마켓은 셀러들에게 거둬들인 수수료의 일부를 네이버에 납부해야 한다.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뉴스1

◇ 쿠팡·컬리 직매입 시대 열리자… 오픈마켓 출혈경쟁에 대규모 적자

쿠팡과 컬리 등 직매입을 기반으로 한 당일배송 시대가 열리자 오픈마켓 위기는 더 가속화됐다. 소비자들은 상품 하나만 구입해도 무료·익일배송을 해주는 로켓 배송·샛별 배송 등에 매료됐다. 그리고 이는 ‘락인 효과(채널에 소비자를 묶어두는 효과)’로 이어졌다.

쿠팡은 대규모 손실을 감수하며 전국에 물류시스템을 구축하고 상품을 직매입해 소비자들에게 전달했다. 배송 기간이 더 길고 배송비도 별도로 부과되는 오픈마켓을 굳이 방문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커머스 트렌드가 오픈마켓에서 직매입으로 바뀐 것이다.

상황이 나빠지자 오픈마켓 업체들은 외형 확대에만 급급했다. 바닥난 재정을 메우기 위해서는 거래액을 늘려 투자를 유치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거래액 부풀리기는 주로 쿠폰 발행을 통해 이뤄졌다. 소비자들에게 할인쿠폰을 제공하고 대규모 거래를 일으키는 방식이다. 할인 쿠폰 비용은 판매자와 오픈마켓이 분담하는 구조다.

데이터 분석 기업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가 발표한 6월부터 7월까지 티몬·위메프 사태의 일간 카드 결제 금액 추정치에 따르면 양사의 카드 결제액은 6월 15일 기준 하루 53억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미정산 사태가 발생한 7월 7일 직전인 6일에는 897억원까지 치솟았다. 이는 티몬과 위메프가 거래액을 늘리기 위해 무리하게 행사를 진행한 결과로 해석된다. 7월 초 티몬은 ‘몬스터 메가 세일’을 위메프는 ‘위메프 데이’라는 이름으로 특가 행사를 개시했다.

이런 식의 출혈 경쟁이 결국 오픈마켓의 대규모 적자로 귀결됐다. 위메프는 지난해 매출 1385억원에 1025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G마켓은 지난해 654억원, 11번가는 1258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11번가, G마켓 등 오픈마켓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쿠폰 발행을 통한 출혈 경쟁보다 수익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경영 전략을 가다듬고 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티메프 사태는 이커머스 시장이 아직 미성숙해 벌어진 일이다. 공격적 마케팅을 통한 생존이 목적이 되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시장이 성숙하면 수익성 경쟁이 이뤄져야 하는데, 작은 시장 안에 플레이어가 너무 많았다”며 “시장이 정리되는 과정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