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몬·위메프(이하 티메프) 대규모 미정산 사태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줄인 정산 주기를 의무화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현재 국내 이커머스(전자 상거래) 플랫폼 정산 기한은 40~60일(위수탁·직매입 포함)이다. 이커머스 업계는 해외 경쟁력 약화를 이유로 정산 주기 감축 의무화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이들과 경쟁 중인 해외 플랫폼의 정산 주기는 상대적으로 짧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래픽=손민균

◇해외 이커머스, 길어야 한 달 이내 정산… 하루 만에도 정산 지급

2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주요 이커머스 업체 정산은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행법상 이커머스 플랫폼은 40~60일 이내에 판매 대금을 정산해 줘야 한다. 티메프와 같은 오픈마켓 플랫폼은 대규모유통업법의 규제 대상이 아니라, 최장 70일 이내로만 정산해 주면 된다. 업체별 정산 주기나 기한이 천차만별인 이유다.

조선비즈 취재 결과 해외 이커머스의 정산 주기는 국내 오픈마켓보다 짧았다. 대체로 한 달 이내엔 판매업체(셀러)에 대금 지급이 완료되는 구조다.

미국 대표 이커머스 업체 이베이는 4가지 정산 주기(매일·매주·격주·매달) 중 하나를 선택해 계약한다. 각 주기마다 정산 기한은 다르지만 최장 20일 이내 정산이 완료되도록 하고 있다.

세계 최대 이커머스 플랫폼인 아마존은 14일 주기로 정산한다. 10년 이상 아마존에서 상품을 판매한 우수 셀러를 대상으로 자금 융통을 해주는 ‘익일 지급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다음 날 판매 대금의 80%를 선지급한 뒤 나머지 20%는 매달 14일 정산 일정에 맞춰 셀러에게 돌려준다.

중국 이커머스 업체 알리익스프레스(이하 알리)는 매달 1일과 15일에 정산을 진행한다. 소비자가 상품을 받고 구매를 확정한 후 7일이 지난 판매 대금을 영업일(월~금) 기준 2일 이내 지급한다. 알리도 일부 셀러를 대상으로 영업일 기준 2일 이내 대금 일부를 지급하는 ‘조기 정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베이 소유의 큐텐 재팬은 셀러 등급에 따라 상품 배송 후 영업일 기준 5~15일 이내 정산하도록 하고 있다. 이때 정산 금액은 일본 현지 은행 계좌인 ‘Q통장’으로 입금되는데, 최소 한 달 내에는 셀러가 정산금을 받게 하고 있다.

싱가포르 기반 동남아 최대 이커머스 플랫폼 쇼피는 정산 내역상 마지막 날을 기준으로 7일 이내로 정산된다. 정산금은 가상계좌 서비스 ‘페이오니아’를 통해 지급된다.

'티메프 사태' 피해자들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직로 일대에서 열린 검은우산 집회에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와 류광진 티몬 대표, 류화현 위메프 대표의 사진이 붙은 박이 놓여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정부에 실효성 있는 구제방안 마련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뉴스1

◇업계, 경쟁력 저하 이유로 난색… “정산 감독·관리 제도 마련해야”

국내 이커머스·오픈마켓 업계는 해외시장 경쟁력 약화를 이유로 정산 주기 감축은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한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해외 플랫폼과 국내 플랫폼의 자본력의 크기는 하늘과 땅 차이”라며 “해외 플랫폼은 정산 주기를 짧게 해도 경제적 타격이 없기에 정산 주기를 짧게 잡았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다르다. 일률적으로 단축한 정산 주기를 단기간에 적용받기엔 직면한 경제적 문제가 다르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현행법상 최대 60일 이내로 정산 기한을 정한 건 당시 플랫폼의 자금 운용 상황을 반영한 결과였다”면서 “합의 과정 없이 해외 플랫폼도 하니까, 국내 업체도 하라는 식의 발언은 모두 죽자는 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산에 대한 감독·관리 제도를 더 촘촘히 해야 제2의 티메프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며 “관련 부처와 업계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티메프 사태는 정산 자금을 다른 곳에 임의로 사용하는 등 기업가 윤리 문제가 드러난 것”이라며 “이커머스 업계가 초고속으로 성장하면서 거래액만 늘어나면 비윤리적인 행동이더라도 사실상 용서하던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 윤리적 차원에서 정산 과정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게 티메프 사태가 시사한 점”이라면서도 “정산 주기 단축 의무화는 근시안적인 해결책이다. 업계 상황을 구체적으로 반영하되, 제대로 사태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논의의 장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