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텐(Qoo10)의 글로벌 플랫폼 위시플러스(Wish+)와 큐텐 자회사 위메프에서 시작된 셀러(판매자) 대금 정산 지연 사태가 티몬으로 번지고 있다.
싱가포르에 법인을 둔 모회사 큐텐그룹은 앞서 정산 지연 사태를 공식적으로 인정·사과하고 셀러 보상안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티몬에서는 정산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티몬에 입점한 셀러들이 미정산을 이유로 상품을 구매한 고객에게 상품 구매 취소를 요청하면서 티몬에서도 정산 지연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에서는 큐텐그룹 이커머스(전자상거래) 플랫폼에 입점했던 셀러들의 대규모 이탈을 우려하고 있다.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큐텐그룹 이커머스 플랫폼 티몬 입점 업체를 중심으로 구매 취소 통보가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소비자에게 티몬 측으로부터 받아야 할 판매 대금이 지연된 상황을 설명한 뒤 티몬 측에 해당 상품 취소·환불을 접수하라고 안내 중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환불 처리가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티몬 측에서 환불 처리를 미루는 바람에 입점 업체에 환불 미처리 신고가 들어오거나 PG사(결제대행업체)로부터 카드 취소가 아닌 환불 받을 계좌를 입력하면 3~5일 후 입금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이다.
앞서 지난 11일 큐텐발(發) 정산 지연 사태가 불거졌을 때 티몬은 “티몬은 정산에 전혀 문제가 없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지만, 열흘 만에 문제가 발생하자 입장을 번복했다.
티몬 관계자는 “신속히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고 확답을 드리긴 어렵다”고 했다.
업계에서는 큐텐그룹 계열사 전반으로 정산 지연 사태가 퍼지는 것을 우려한다. 큐텐을 포함해 위시플러스, 티몬, 위메프, 인터파크커머스 등에서 셀러가 동시다발적으로 이탈할 경우 거래액이 크게 감소해 지금보다 정산금 지급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지난 17일 큐텐이 셀러 정산 지연 보상안을 제시하면서 이른바 ‘셀러 안심시키기’에 나선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사실상 악순환 고리에 빠지는 것만큼은 막겠단 취지다. 현재 큐텐그룹은 이달 말까지 정산 지연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큐텐그룹의 수장인 구영배 대표도 긴급 귀국해 지난 18일 티몬·위메프 대표 등을 만나 정산 지연 사태 해결책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노력에도 국내외 셀러들을 중심으로 큐텐과 계열사 플랫폼 입점을 중단하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받아야 하는 판매 대금도 정산받지 못한 상황에서 계속 물건을 판매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티몬·위메프 입점 셀러 A씨는 “위메프 정산 지연이 터졌을 때 위메프에 입점한 업체는 ‘품절’로 문을 닫고, 티몬은 괜찮다고 해서 티몬에서만 물건을 판매했다”며 “아직 받지 못한 대금만 수십억원이다. 괜히 더 판매해서 못 받을 수 있는 정산금이 늘리느니 두 곳 모두 문을 닫는 게 이득일 정도”라고 했다.
업계에서는 큐텐그룹의 자금난(難)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보고 있다. 큐텐의 정산 지연 사태가 이번이 처음이 아닌 탓이다. 이미 큐텐그룹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셀러 정산 대금을 수개월째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큐텐에 입점한 일부 셀러들은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원까지 정산 대금을 지급받지 못한 상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티몬의 2022년 기준 자본총계는 -6386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부채총계도 약 7858억원으로, 지난해 동기(6504억원)보다 늘어났다.
같은 기간 티몬의 유동부채는 22% 증가한 7193억원이었다. 유동자산은 1309억원으로 지난해 대비 22% 줄었다. 유동부채는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빚이고, 유동자산은 단기간에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을 말한다. 유동부채가 유동자산보다 크다는 건 당장 유동자산을 현금화하더라도 빚을 갚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에 티몬은 올해 4월 마감이었던 감사보고서도 제출하지 않은 상태다. 통상적으로 감사보고서를 제때 제출하지 않으면 재무 상태가 불안정하다는 걸 의미한다.
정산 지연 사태의 시발점이었던 위메프의 지난해 부채 총계는 3318억원으로, 전년 동기(2608억원)보다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큐텐그룹은 티몬과 위메프 등 이커머스 계열사 합병설이 돌기도 했다. 시스템을 통합해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계열사들을 통합해 비효율을 줄이기 위한 취지로 해석된다.
한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현재 PG사와도 환불 지급 문제가 있는 걸로 안다”며 “이른바 ‘환불런’이 발생한 건데, 현금 유동 자체가 불가능해져 셀러 정산이 아예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번 정산 지연 사태는 큐텐그룹에 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돈이 없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며 “계열사 합병 추진설은 무리하게 몸집 키우기로 발생한 자금난을 단기적으로 해소하고자 하는 결정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라고 했다.